임송자 조각전 다녀온 날

 

버스 정류장 두 개를 지나면 된다고 해서 걸었는데

800원을 아낄 요량이었다면 길게 느껴지는 거리이다.

3 km는 족히 되겠네.

가로수로는 저질 잡목인 아카시아가

용케도 종족 말살의 재앙을 모면하고 송구스러운 자세로 서있는

길에 깔린 잎들에 비가 뿌린 다음이라서

발효하는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쪽빛이 사라졌다고 하늘이 어디로 간 것도 아니고

송자(宋磁) 회청색(灰靑色) 같은 빛깔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예배당에 다녀왔고

간밤에 잘 자지 못했고 먼 길 걸었으니 쉴 만하지만

주말인데...

흠 뭐 내게야 주말이라고 다를 것도 없지만

환자의 입내로부터 멀어지는 시간도 좀 누리고 싶다.


그래서 찾아간 길이다.

참 이상하다, 괜히 혼자 다니는 게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뭐 형편이...


임송자 조각전.


뭘 알아서도 아니고

특별한 관심으로 끌린 것도 아니었지만

[e-기원 기자]의 블로그를 보고 불현듯이 가고프게 되어서.


중등교육과정을 마친 이들에게 있어서

조각이라고 하면 세 가지

밀로의 비너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나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육덕과 탱탱함과는 거리가 먼

자코메티가 어떻게 내게 일찍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와 내가 나란히 서면 1111 ‘빼빼로’이었다.


덩어리라는 양감이

조각이 회화와는 다른 경로로 다가와서

우리 감관을 건드리는 두드림일 것이다.

그렇다면 보기만 할 게 아니고

만져야 작품을 향수(享受)하게 되는 게 아닌지.

조각품이 시각만의 오브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삼십에다 또 몇 년을 더하여 떨어져 있다가

고국에 돌아와 처음 들린 전시회이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라는 촌스러운 경고판이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모른다.

난 만지고 싶다.

뭐라고 써있지 않으니

만져도 되는 것 아닌가.


건드리고 

어루만지고

입 맞추고

안고 싶다.


작품의 구석구석과

그것을 빚은 작가의 손을

느끼고 싶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눈이 하고

눈으로 다 되나

손이 가야 되는 것.


저녁에 아버님의 침상 곁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내가 당장 어떻게 된다는 건 아니지만

내일이 보장된 것도 아니니까

이 말은 꼭 하고 가야 되겠기에...”

나는 듣기만 했다.

주물러드리며.

한 군데 주무르는 동안

참을성도 없어라

다른 데가 아프다는 사인을 보내셔서

손이 참 바빴다.

그래도 말로는 연결될 수 없는데

손이 있어서 접촉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 난 만지고 싶다.

손은 둬서 뭐하게?


개혁주의 신앙 전통에서는

아이콘을 채택하지 않는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라는 계명뿐만 아니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그러셨으니까.


보는 하나님, 만지는 하나님 계셔도

(나는) 괜찮을 것 같은데...

거기에 절하고 빌자는 게 아니고

사랑하자면 만져야 할 것 같아서.


전시작품을 두고서야 내가 뭐랄 수 있겠는가.

“음”

그리고

“으흠 이것도”

“그래 그렇구나”가

전부이다.


뭐 요거 하나쯤

슬며시 끼여 넣을 수 있겠는지.

렘브란트는 그림 어느 구석엔가 꼭 제 모습을 남겨 놓던데

선생님도(그래, 선생님?) 작품마다 제 형상을 찍어냈더라.

어, 적어도 눈매만이라도.


나는 자주 연애하고 싶어진다.

(큰일이야.)

그냥 “아 저렇게 좋은 분이 있구나” 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작품에 아직 쏟아내지 못하고 그의 내부에 남은

예술혼을 엿보고 싶고

마음을 결대로 쓰다듬고 싶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보려고 한 적은 거의 없다.

될 일이겠는가.)


나가면서 목례로 인사하고 지나치려 했다.

눈가에 서늘한 웃음을 달고 다가오시네.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디서?

“저...”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요.)

몇 천원 내고 작품 소개 사진 목록을 미리 구입했어야 하는데

빈손에 쥐어주신다.

 

테라코타 하는 분들은 다 그런가

아름다운 황혼처럼 편안한 얼굴이시네.

황혼이라... 실롄가?

(내 경우엔 누가 빨리 그렇게 불러 주었으면 좋겠지만...)

Sunset is a special time--

a moment of delicate loveliness and new found optimism.

뭐 여긴 저녁이 더 밝으니까.

밤이 기니까.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저물고서야 활동하니까.


 

             

 


(초상권 침해...로 망설였지만...

작품 사진은... 그을쎄... 이기자 님의 블로그를 방문하시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