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에 어지러운 겨울 첫날
도시의 겨울은
갈기를 세우고 사납게 달려드는 맹수 같은 기세로
쳐들어오지 않는다.
그리움처럼
길들도록
조금씩 스며들듯이
추위도 한꺼번에 오지는 않는다.
추워졌다고 그런다.
내겐 비로소 삽상한 기운이 느껴지기에
산보길이 늘어났다.
어쩌다가 이런 데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H백화점 지하층이네.
새우도 괜찮고 볶음밥도 괜찮지만
새우볶음밥은 별로라고?
그건 광식이 생각.
광막지야(廣莫之野)에서 수십 년 살았는데
내가 여기 서있는 게 어색하지 않네.
낯설지가 않아.
다 보기 좋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
돈이 좀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지족선사(知足禪師)는 무너지고 싶다.
여기 오래 있을 것은 아니니까
(나뿐 아니고 다 장보고는 나가더라.)
나가면 찬바람에 정신들 테니까
도덕성을 들먹일 건 없다고.
동안거(冬安居)로 들앉을 자리
아직 나지 않았다.
머묾이 길지 않다면
반길 벗이 있을 것이다.
찾아가다가 뭐하는 짓인지 잘 모르겠으면
돌아가면 된다(興盡而返).
(梅花草屋圖)
"田琦, 그를 슬허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