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잘된 무협지를 읽고 있노라면

그 황당한 내용 때문에

구겨진 기분이 풀어지게 된다.

형이나 초식이나 검결이 없이 마음으로 펼치는 검이

구질구질한 것들을 쓸어버리고.


그런 기대로 영화 보러 다니는가보다.

뭐 나오면서 본전 생각나는 때가 자주 있겠지만.


친구들.

그저 그만한 동류가 서로 추켜 주면서

유쾌하게 시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아무하고라도 영화나 보고 싶은 날

만만하게 전화 걸 사람도 없던 차에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그래서 어울렸다.


옆 자리에는 굉장치도 않은 저항시인이

기름기 빠진 얼굴로 식사하고 계셨지만

우리는 폐가 될 정도로 소리 높여

우의를 확인했다.


타이 매고 불편한 구두 신은 이에게

산에 올라갔다 오자고 그런다.

미끄럽고 가파른 길 잘 다녀왔는데

웬 고약한 냄새를 달고 왔다.

앗 X 밟았구나.

수없이 다닌 길인데 난 그런 적이 없거든.

그야 자네는 관악산 지신이 봐주니까.

그러고 우리는 신발 바닥을 같이 씻었다.


한번 사랑에 생명을 바치겠다면

여벌 목숨이 여럿이라도 어디 감당하겠나.

그러니 우정이 좋다는 거지.


갓 구워낸 빵 같고

초겨울 툇마루에 남긴 햇볕 같은 게 있으니까

그만하면 살만한 세상이라고.

좀 추워도 견딜 만 하다고.


X 밟았지만

기분 더럽지 않은 날.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