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아빠 일일 보고
목이 길진 않지만 슬퍼 뵈는
그래도 뭘 먹고 자랐기에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높은 건물 꼭대기는 보통 비어 있더라만
펜트하우스를 잘 가꾼 그는
이렇게 전화를 시작한다.
“뭐 했어? 당신이 먼저 연락하면 안 돼? 섭섭해.”
핫케이크 두 장과 커피에 삼천 원
하나 주문해서 둘이 나눠 먹으며
오래 앉아있었다.
입가에 웃음을 달았어도 서글픔을 감추지 못하는
잭 레몬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 양반의
뽀다구잡음--품위 유지라고 그럴까--은 놓지 않는다.
(험, 자네는 諒伴인가, 난 佯半일세.
반쯤은 가짜야, 알지?)
중늙은이들끼리 눈 맞추고 다짐한다.
그래도 우리 놀림 당하면 안 돼.
고도는 오지 않아
그러니 그만 일어나자고.
청계천을 걸었다.
내가 서린동 출생이걸랑.
겁 없이 강호를 주유하던 시절
마인(魔人)의 혈장(血掌)을 가슴에 맞아
안중근 의사 손자국 같은 게 찍혔거든.
그 후로 어찌나 답답하고 더운지
그렇다고 풀어헤치고 다닐 수도 없고
그나마 찬바람 부는 계절이라서 견딜 만하구먼.
그렇게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니까
콧물이 흐른다.
동병상련이라지만
같이 아파서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나 찾지 마.
그는 동창회로
나는 집으로.
피파는 지나간다.
(God's in His heaven--
All's right with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