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4
선잠에 개꿈까지.
처음엔 ‘乙’자인가 했다. 요즘에 ‘갑의 횡포 을의 눈물’ 얘기 많이 나오니까.
乙乙乙乙 뭔 을이 이리도 많이... 太乙呪도 아니고 뭘까? 궁리하는데
뒤통수에 곰방대가 날아와 딱.
눈 비비고 다시 보니, 응? 꼭지가 달렸네.
之之之之???
살지 말지 죽지 말지?
어허, 그거야 天命이니 의지로 어떻게 할 게 아니네.
{삶으로의 강제, 죽음으로의 강제, 그러니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자살? 못된 것들.}
허면?
가지 말지 잡지 말지 울지 말지 뒤돌아보지 말지.
그래, 그게 맘대로 되나 할 게 아니고,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되네.
아니면? 에이, 막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 싹싹하게.
그렇게 맡기는 건 마냥 수동적인 게 아니고, 착하며 강한 의지의 發露라고.
장미 꽃잎들이 도르르 말리더니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가는 거지.
눈꺼풀 하르르 눈물 주르륵.
오월은 장미의 계절? 여기서는 아니고
다 졌네. Floribunda, Hybrid Tea처럼 잡종강세로 우아함을 더한 것들은.
가버린 장미를 위한 悲歌 연주 필요 없네. 가을에 선선해지면 한 차례 더 오겠지.
홑잎, 오래 전부터 양악수술 같은 것 없이 “내 모습 이대로”로 남은 것들은 아직 버틴다.
위해줘야 할 애들은 그렇게 야단스럽지 않으면서 제 자리 지키는.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
학대, 배신, 실연 같은 것들로 內出血? 아니고
벌레에 물린 자국투성이.
왜? 방치한 풀밭에 들어갔다간 영락없이 걸리게 되는데
우선은 chigger, 0.3 mm 정도로 작은 진드기, 피 빨아먹는 놈.
아 고놈은 일단 사람에게로 옮기면 양말, 속옷 등의 고무 밴드나 허리띠 근처로 이동하는데
그래서 나중에 물린 자국들이 줄을 이루기도 한다.
아직 피부 속으로 침투하기 전에 떼어내면 좋지만 워낙 작아서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어렵다.
괴상한 놈에게 걸리면 적어도 며칠, 과민체질인 경우에는 한 달까지도 가려워 고생한다.
낫다 해도 흉터는 여러 달 가시지 않더라고.
다음에는 불개미, 이것들도 걸려들면 최소 백동전 크기만큼은 부풀고 좁쌀알 같은 곪은 자국이 남는다.
아이고 가려워라, 참을성 없는 이는 트위스트 추듯 해괴한 몸짓으로 긁적긁적.
사람에게 직접 달라붙기도 하지만, 풀밭에 들어갔던 개가 옮겨오기도 한다.
개나 고양이도 걸려들면 애처롭도록 괴로워한다.
{길게 읊을 얘기도 아닌데, 한국에서도 살인진드기에 물려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게 여기서는 Lyme disease라고 물렸다 하면 마비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병을 옮기데.
에고 무시라.}
왜 그런 것에 물리냐고?
풀꽃 찍겠다고 들어갔다가 걸려들거든.
집 앞 공터가 엉겅퀴 천지인데 {Heathcliff 사는 ‘폭풍의 언덕’도 아닌데 말이지}
그쪽으로 근접하자면 다른 높은 키 풀띠를 지나야 하는데 死線을 통과할 용기가 나지 않네.
망원렌즈는 내 예산으로 그렇고 zoom 倍數 높은 사이버카메라라도 하나 마련해야겠어.
간밤에는 공습경보가 울렸다.
북쪽 애들이 대륙간 탄도탄을? {있기는 하겠어?} 그런 게 아니고
Tornado(큰 회오리바람)가 쳐들어왔다.
모든 TV, radio는 정규 프로를 중단하고 어느 지점을 어느 시각에 통과한다는 속보를 내보낸다.
“OO시, HWY OO는 몇 시 몇 분에 통과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추정 시각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즉각 대피하십시오.
집안에서는 유리창과 떨어져 있고 화장실이나 가운데 복도에서 담요를 두르고 계십시오.”
우박의 크기는 콩, nickel-5전짜리 동전-, 탁구공, 야구공, 볼링공으로 구분하는데
어제 다른 곳에 내린 것들은 소프트볼 사이즈.
다행히 우리 동네는 건너뛰었다.
지역에 내려앉았던 회오리바람이 13 차례, 최대 풍속은 200 mph.
아침에 비는 멎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뭉쳐있던 구름들도 풀어지면서 해가 났다.
한 구역이 싹 날아가 버리고 제 집터였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건질 게 없나 돌아보다가
茫然自失, “이러고도...” 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하늘이 파란 낯빛으로 시치미.
으그 미운 것.
사월은 잔인한 달? 오월도 순하지 않은 걸.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이라더니, 짚으로 만든 개 정도로 대접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