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됐어요
뭐 까탄에 괏다 티네
겨울날씨답지 않게 포근한 데다 하늘이 하도 푸르러서 차를 멈추게 되었다.
아침마다 산책하러 찾던 공원에 한 달만에 찾아온 셈이다.
못에는 여전히 오리, 고니 등 새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날 알아보는 놈이 있을까?
그때 그 녀석들인지 새로 온 놈이 몇이나 되는지 내가 알지 못하면서 바라기는...
오리야 다 똑같지 뭐.
'자연현상'으로서의 오리는 다 '그게 그거'다.
철새 서식과 도래 경로 등의 정보를 위하여 인식 표를 달아주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은 그 많은 오리들을 분간할 재주가 없다.
'개'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기르던 개가 어떤 이유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어쩌다가 들개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만일 내가 그들이 출몰하는 곳에 근접한다면, 그 개는 나를 알아보고 달려올 것이다.
집에서 키우던 때의 몰골은 아니더라도 나도 그 녀석을 알아볼 것이고.
이별의 상처나 배신감은 어디다 흘렸는지 부둥켜안고 뒹굴 것 같다.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로 돌아갈까 돌아가?
관계를 맺으면 그렇다는 얘기지.
"오리야, 너희들은 날개가 달렸으니까, 그리고 나도 갈 사람이니까, 우리는 관계 맺지 말자.
눈 마주쳤다고 길들여지지 말고 '소 닭 보듯'으로 남자."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참 좋은 날인데,
우리 백성들은 편안치 않으리라.
허탈하겠지.
또 난리법석이겠네?
뭐라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뭐 까탄에 괏다 티네...
이젠 그런 말 들어보기 어렵겠지만,
일부러 꼭 그 말을 찾아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때에 쓰면 '딱'일 것 같다.
서북사투리로 "무엇 때문에 이 소동이냐? (소란 떨지 말게.)" 라는 뜻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다룬다
"산은 산 물은 물"을 말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이
자연과학이 자연을 다룬다는 말을 듣는다면
"누가 모를까 봐... 그걸 말이라고?"라는 심사이리라.
자연현상은 같은 조건에서 재현 가능하다.
실험이란 인위적인 특정환경에서 관측한 '자연'의 기록이 정확하면
그 기록에 따라 똑같은 상황을 제공할 때에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 때문에 가능하다.
자연은 반복가능하고 실험가능하기 때문에 '법칙'으로 정립되기만 하면 재검증할 필요가 없다.
자연과학을 '누적적 지식'이라고 한다.
이미 이루어진 업적들을 재검증할 필요 없이 그것들에 근거해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인문학은? 철학을 예로 들어보자.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의 사상에 일련의 각주를 다는 작업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철학에는 이런저런 큰 스승들이 가끔 출현했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법칙이 되지도 않고,
징검돌처럼 놓여 이미 쌓은 것을 바탕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내장(built-in) 프로그램이 없다.
(내 경우는... "플라톤? 걔 아닌데요. 헤겔? 걔도 아닌데요. 왜냐 하면..."으로 시작했다가
아무 격려 없이 조롱만 받다가 피박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런 얘기는 상식이기도 하고,
배우던 시절에 주워들었지만 이제 와서 다시 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인데...
'말짱 황'으로 끝난 '황당한' 얘기 때문이라고.
검증으로 재현하면 되잖아?
이제 와서 '표본'도 '기록'도 '결과'도 없었다?
그게 뭐냐는... 차암 내...
과학자는 세상 탄다
그냥 제목만 달자.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사니까,
우리 사는 세상은 일차적으로 정치-경제-문화적 환경 아닌가?
게다가 과학자 자신의 인격, 포부, 동기까지 고려한다면...
아휴~ 그 정도 하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민족성'을 들먹이는 것은 청산해야할 식민사관 때문이라고 치고,
그래도 (전체적으로) 반성해야 할 점은 돌아보아야 할거라.
시작이 언제였는지, 어디까지 거슬러올라갈지 잘 모르겠지만,
이 난리는 그때 그 '미선이 사건'과 월드컵 붉은 물결이 탄핵 반대로 이어지던
집단 히스테리의 연장선이 아니겠는지...
꼬집자는 게 아니고 치유해야할 병통을 자각하자는 얘기.
아무렴 특정 소수 집단이 이런 사회현상을 단기간에 촉진시켰겠는가.
그러나 이런 병리적 현상의 수혜 대상은 분명하다.
부작용이나 골수에 사무칠 악영향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을 사람들.
수령님의 서거 후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북조선 인민들처럼
나라님을 위해하려는(?) 음모에 맞서 단상에서 방성대곡하던 이들은
얼마 전에 소수파의 미미한 저항을 가볍게 물리친 후에
"억울하면 다수가 되라"는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채택한 이분법과 증오의 정치는
우리 사회가 벗어 던지기 어려운 큰짐이 되고 말았다.
(물론, 오랜 동안 증폭된 '허위의식'이라는 짐이 다소 줄어든 것은 그들의 공헌이다.)
'바람'으로 몰고 가려는 전술은 어느 정치집단이라도 채택할 수 있겠지만,
이제 우리는 좀 거부하거나 맞설 줄도 알자.
(아, 이제 생각나는데...
"영일만에서 석유가 나니까 우리도 이제 산유국 대열에... 잘 살 수..."
뭐 그런 적도 있었어. 그때 원유를 담은 잔을 입에 대기도 했지 아마?)
창피하지만...
창피하기야 하지.
그러나, 진실은 밝혀졌으니까 시원하기도 하다.
여기서 끝난 것이 감사하다.
(물론, 훨씬 이전에 해결됐어야 했지만.)
누가 그러네.
국치일이 아니라 잔칫날이라고.
내 참...
어쨌든 창피함도 지나갈 것이고...
그러나, 교훈 없이 잊혀지면 안될 것이고...
그런데, 진상이 드러났다고 그러니까
"누가 호루라기를 불었을까?"로 생각이 이어질 텐데...
뭇매 맞을 때는 참 안됐고
뭘 모르고 돌 던지던 사람들이 미안하니까 머쓱하겠지만,
기사회생했으니 축하할 일이지만,
전에는 그들의 보도 내용이나 태도가 바람직했는지?
지금 따질 형편은 아니지만,
'진실의 수호자'로 소급하여 서훈 대상이 될는지는 좀 두고보자.
그리고 그렇지,
그 한 분이 한국의 '과학계'--그렇게 묶을 게 아니지만--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거든.
잠시 손해(setback)야 어떡하겠냐만, 이상냉온이 지난 다음에는 또 자랄 것이고.
딴 얘기지만, 박지성 한 선수가 한국 축구를 살리는 것도 아니라니까.
(실은 역기능이 만만치 않거든. K리그를 살리자고.
이젠 '조블 간판 글'에도 박지성 얘기 그만 올리자고.)
Be still, Korea
'핀란디아'의 곡조에다가 가사를 붙인 찬송가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Be still, my soul."
"잠잠하라, 내 영혼아."
나도 이렇게 떠들어대고 나서 할 말이 아니지만,
우리 이제 좀 다물고 가라앉히고...
(또 용서하고, 격려하고...)
연구 성과의 빠른 실용화를 기대하며 성원하던 여러분들,
특히 난치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하늘의 위로가 임하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