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새

 

일단 잘 봐주기로 하면
약간의 흠은 청자연적(靑瓷硯滴)이라 하고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니 한다.


그렇게 잘된 글로 쳐주는 것들의 상위 랭킹에
이양하의 '나무'는 아주 붙박이로 자리잡았다.


시침도 솔기도 없다니까
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는데
더 맛 나는 부분을 고르면
불경죄가 성립할는지 모르나
사람들은 보통 목살과 족발을 고르더라.


이번엔 뜯어먹기 좋은 뱃살을...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
으나, 이심전심 의사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 말로 바람쟁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 올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
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
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
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하는 일
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
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하는 법이 없다.


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하고 공감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김환기, '달과 매화')

 

 

한여름 서로 닿아 간지러움도 좋다고 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헐벗은 채
'그대 있기에'로 제 자리 지키기에는
(밑으로야 서로 얽혔는지 모를 일이지만....)
너무 시리고
서로 마주보기도 그렇다.


네게 새가 앉는 것을 보고 "내겐 왜?" 할 것 없고
금방 날아가는 것을 보며 "하하 쌤통" 할 것 없고
새는 새니까
우리는 나무니까
우리는 떠나지 못하니까.

 

 

     

 

                      (정약용, '매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