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3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일정 말기의 서정시인들에 대하여
'역사를 외면하고 겨레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고 작가 내부로만 천착한 죄'를 묻기로 한다면?
글쎄, 그게 해방 직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에서라면 있을 법한 얘기지만,
60년이 지난 후에 '과거사 정리'라고 하면서 단일 잣대가 주리와 태장이 되어
모든 유미주의를 "심히 치렷다" 할 수 있겠는지?
오래 전에 가신 님이기에 새삼스레 욕보지는 않겠으나 만일 영랑이 살아있다면
무슨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 같은 관제 린치 집단의 소환을 면치 못하리라.
그때가 언제라고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 같이"나 쓰고 앉았냐?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르는 아츰 날빗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피ㅅ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잇는곳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감동과 감탄
걸작품에는 감동과 감탄이 따른다.
감탄은 "어쩌면 저렇게 빼어날 수가 있담..."이라는 놀람이겠고,
감동은 다른 것들보다 뛰어난가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이끌리고 젖어드는 느낌이겠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전학년 동안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은 천재 소년이
수능고사에서 만점을 맞았다면 사람들은 감탄할 것이다. "역시~"
지능 장애 학생이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고등학교 과정이라도 마치면
사람들은 감동한다. "어쩌면..."
진지한 노력이나 그 흔적이 드러난 작품을 보며 감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썼다고 다 좋은 결과가 따르는 것은 아니고
(애썼겠지, 애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애쓴 것 같이 보이지 않는 작품이 보통 수작인 것 같다.
명선수의 묘기는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이어지지 않던가.
누구라도 만들 것 같고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만든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닌
그런 게 '물건'일 것이다.
감탄은 해도 감동이 따르지 않는 것도 그저 그렇지만
감탄을 동반하지 않은 감동은 명품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Effortlessly!
산책길에 크고 작은 못이 몇 개 있어서 새들을 보게 된다.
조금 떨어진 데서 고니를 보면
그냥 수면 위로 미끄러져 가는 것 같다.
(옛적에 운길산에서 내려다보면
소금 싣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황포돛배가 그렇게 움직였었지.)
도무지 애쓰는 것 같지도 않고 정말 우아한 기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게
물갈퀴를 얼마나 힘겹게 움직이는지 모른다.
해서 얘긴데...
산다는 건 죄다 힘겨운 일이야.
세상에 놀고 먹는 게 어디 있어?
(남이야 어찌 보든 말이지.)
그저 바람길 따라 은파(銀波)나 보여줄까말까 하는 수면 밑에도
격동이 있더라고.
치열한 다툼이 있더라고.
그러니 가을하늘 같은 선선한 웃음을 입가에 단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그렇게 맑을 수는 없을 거라.
"나 지금 아파" 그런다고 덜 아픈 것 아니니까
(아픔은 내 몫이지 누가 대신 아파 주니?)
찡그리지 않는 거라고.
(그것도 기술이야. 많이 연습해야돼.
남에게 아픔을 퍼트리지 않겠다는 선의를 지키며.)
그렇기야 하겠냐만
그분이 그러셨으니까...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무슨 사랑이 예쁘고 편하고 좋기만 하랴
야속한 손님 같더라고.
올 때는 낯설어 어색하고
알 만할 때 되면 가더라.
봄바람에 꽃망울 터질 때 무슨 소리가 난다면 꼭 그럴 것 같은
하 그런 웃음소리가
서늘한 검기(劍氣)로 다가와 마음을 저미기도 하더라니까.
오해였을까?
우선 시작해보자고 그랬다.
매화 봉오리 터지는 소리 들리는가
자투리 같은 목숨 끝자락 보이는 곳에 이르러
아직도 더운 가슴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맹랑하고 굉장한 일이다
양배추 고갱이처럼 겹겹이 포개진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사랑한다는 게
......
...
.
사랑이란 만나서 뭘 어쩌자는 게 아니고
나의 임종을 지켜줄 만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
넉넉해진 마음
될까?
새벽에는 편지를 썼다.
켕기고 떨리던 처음처럼
늘 그런 처음처럼
하루를 시작하면서
편지를 쓴다
하루가 한달 맞잡이로
기다리던 답장 없어도
또 쓴다
불꽃 일으키지 못했어도
불씨 하나는 심어주려고
몰라 불씨 남았는지.
삭정이 타고 다 사윈 것이지만
질화로에 담아 들여왔다.
온기 없는 듯 해도
어둔 데서 보면 부젓가락이 벌겋더라.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떡하니
그리움은 거리감이라고?
기다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확인하려고 기다릴 필요는 없는 거예요.
'마침내'는 마침표 찍을 때에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하이 참,
끊고 나서 확인하는 참사랑.
가만 있자...
끊어졌어?
더욱 사랑
사랑으로
우리 사랑으로
그래 사랑으로
갈 길 가면서
일으켜주고
안고 업어주고
사랑하기에 다친 걸 감사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해치지 않고
'사랑했기에'란 말 하지 않고
그냥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갈 데까지 가면서
사랑이 사랑을 불러오기
에이, 괜히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라는 구절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냉면 가락 끊지 못하듯
구질구질 길어지게 되었네.
어둑해서 남들 눈에 안 띌 때쯤 되어
고샅길로 돌아가 지나온 동네 둘러보았지.
그냥 흑백사진으로 남기엔 아쉬우니까
담채(淡彩)로 분위기 좀 띄워도 괜찮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