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크리스마스
가장 조용한 성탄절을 맞는 셈인데
쓸쓸하다기보다는 평안하다.
Last-minuit shopping을 위하여 사람물결을 헤치고 다니고
성의 없는 인사를 숙제하듯 치르고
예배, 그리고 잔치와 번거로운 만남으로 쉬이 고단해지면서도
가면 또 허무하다고 그럴 텐데...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크리스마스는 가고 안 오는 건가?
이듬해 꽃 보기를 당연히 기대하는 사람은
몇 번이 될지는 몰라도 많은 명절을 맞이할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랬다.
Oh why can't every day be like Christmas
Why can't that feeling go on endlessly
For if everyday could be just like Christmas
What a wonderful world this would be
크리스마스가 어떻다고
매일 크리스마스 같기를 바라는 걸까?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경배(mass)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그리스도 없는 크리스마스는 말이 안 되는 거겠지?
미국의 소문난 큰 교회 몇 개는 올해 성탄절과 주일이 겹쳤다고 해서
성탄절엔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뜻으로 주일 집회를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에서조차 그리스도가 실종되고서야
다문화/다종교 사회에서 'Christmas tree'라고 하는 건 타종교인에게 실례이니까
'Holiday tree'라고 하자는 목소리높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기독교 후기 사회(Post-Christian Era)'라는 말이 맞는가보다.
'크리스마스'는 지난 세대의 향수와 고상한(?) 서양문화의 흔적으로 잔존하는 것일까?
예배자의 삶에서만 크리스마스는 제 자리를 찾는다.
무슨 연극을 보듯이 축제에 끼여들 듯이 하루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구유 같은 인간의 심성에서 다시 태어나시고
누워 계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사람에게만
"날마다 크리스마스 같다면"이라는 말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If everyday could be just like Christmas,
What a wonderful world this would be.
화무십일홍이라는데 백일홍(>배롱)이라면 정말 대단한 거지만
그건 지지 않던가?
자꾸 떨어지는 만큼 이어 피기 때문에 그렇지
그 작은 껍질들이 붙어있는 날들도 실로 짧다.
백일홍이 아니라 삼백 예순 닷새 하냥 피어나는 크리스마스를!
하여 눈에 띄지 않지만, 그저 혼자나 알고 지나갈 길이지만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연말 정서와 겹쳐 이런저런 모꼬지 판과 노라리 세월에 끼여
쉰 떡처럼 지나가는 성탄절이 아니기를.
단 한번에 지나가는 것이라면 너와 나의 만남은?
오늘 부닥치고 겪었고 행한 모든 것들은 단 한번 일어나고 지나가는 것 아닌가?
하루밖에 없는 크리스마스는 아니다.
오늘과 똑같은 크리스마스는 아니더라도
(그야 새날이니까)
내일도 크리스마스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