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

 

구덩이에서 새로 꺼낸 포기김치
살얼음 걷어내고는
시림에 진저리치며 썬다
서걱서걱 잘도 베어져서
딴 생각 없이 열중하는데
팔랑거리는 잎 하나 창가에 앉는 바람에
심란해져서 마종기 시편을 외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헛칼질 한번 했는가
그땐 몰랐는데
수건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서 알았다
보시기에 이미 담은 것은 어떡할까
내 피 한 방울쯤 나눠 먹어도 괜찮을 것 같으니
시치미 떼자

                                                                                              

 

봉숭아물들이듯 손가락 싸매고는
무에 그리 잊지 못할 것이 있었는지
쓰라림 같은 앙금이 떠오른다
말은 그리 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지
미어진 거
메운다면서
미루적거리다가
아주 터진 걸
이제 어쩌겠냐고
차라리 단면이 깔끔하게
잘 드는 칼 몇 번 휘두르는데
눅진눅진 질척질척 구질구질은 떨어지지 않고
세월은 물 베기처럼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