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除夜) 1


배운 바 없는 데다 외진 곳에 사니 초계문신(抄啓文臣)이나 계관시인(桂冠詩人)을 알 리 없으나
세모의 기분도 그렇잖은데 싸라기가 함박눈으로 바뀌고 보니 
죽란시사(竹欄詩社)나 다신계(茶信契)를 소집할 사발통문 돌리고 싶다.
(멋있게 들릴까 싶어 한번 해본 말이지
나는 다각 구도에 익숙하지도 않고
무슨 회(會), 단(團), 단(壇), 계(契), 사(社) 같은 데 끼지 못해서 서럽지는 않다.)

 

 

            


 

여럿 아니라도 괜찮다.


그가 당신이라고 부른 사람들에 마음쓰지 말고
네가 그를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으면 되잖니?
그렇게 부름으로 멀리 있는 그를 당겨 놓고
묵언 합장으로 기원하면 되잖니?


-10, -9
못 듣는 줄 알고 퍼부은 말들 잊어버리고
(벙어리라고 귀머거리는 아니지)
네 수화(手話)를 흉내내며 조롱하던 것 용서하고


-8, -7, -6, ...
꽃밭에서 어찔했던 일
나비 잡으려고 손벌렸던 일
땅파려고 애썼던 일
밀물이 발바닥 간질이던 일
우습지도 않게 골내던 일
상기시키고
알아보고 웃음 짓거든
볼우물에 차 한 방울 똑.


0.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