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00형께
인쇄소에서 금방 빠진 것, 잉크 마르기도 전에 부쳐주시니...
늘 받기만 하니 고맙기는 하지만 얼굴 들지 못하는 채무자 같아서 원...
여기야 뜨거운 데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서울도 많이 더워졌다고요?
갈 길이 멀어서 ‘初夏’이지 여름에 들어선지 한참 된 것 같습니다.
목백일홍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에 배롱나무꽃이라도 없으면 색깔이 없을 정도입니다.
초록도 지쳐선지 상쾌해 보이지 않습니다.
물을 주지 않으면 땅이 갈라지기 때문에 잔디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집 둘레를 적셔줘야 합니다.
아, 유도화(협죽도)도 있군요.
그게 진드기가 많이 달라붙기는 하지만 물을 많이 요구하지 않고 기르기도 쉬운데다가
꽃 피는 기간이 길어서 큰길 중앙분리대나 집 뜰에도 많이 심습니다.
그게 맹독성을 지녔어요.
몇 해 전에 제주도에서 두 아이가 가지를 꺾어 김밥 집는 젓가락으로 썼는데 그 정도만으로도 그만...
그리고 목련.
그것이... 한국에서 초봄에 촛불 밝히듯 피는 것을 찻잔 같다 하여 ‘cup and saucer’라고 하는데
남쪽지방에서는 그런 것들이 잘 안 되고 진초록 두꺼운 잎에 아주 크게 자라는 나무,
꽃은 그저 그렇습니다. 하얗기는 한데 벌어지기도 전에 누렇게 마르고 말거든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 때에
고양이 세 마리 돌보시느라 집을 비우지 못하시는 줄 알지만
언제 이곳에서 한번 모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야 형을 따라가야겠지만 이쪽 큰 산 오르자면 제가 향도로 나설 텐데요.
관악산이나 오르던 벗들과 더불어 3000m 되는 산들 오를 날 올까?
龍蛇飛騰의 필체로 쓰신 형의 手迹 같지 않은 것, 私信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그간 블로그 새 글도 올리지 못하고 해서 그냥 이렇게 보냅니다.
一石二鳥, 一擧兩得,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이 쑤시고 둥지 털어 불 때는 셈법을 버려야 할 텐데...
Liriodendron
평안하셔요.
혹 여름 가기 전에 뵐 수 있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