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1


1  난의 죽음


(집착을 그토록 경계하는 사람들이

최상품 난을 모으고 자랑하기도 하던데)


길러본 적 없는 난 한 촉 얻어

어찌할 줄 몰라서

물만 열심히 줬다

다른 것들은 물 얻지 못해 죽고

난이란 놈은 물 많이 먹어 죽고


귀한 줄은 아니까 버리지도 못했는데

에잇 고거 잘 죽었다

~라고 말하려다가 

목이 메어 말 되어 나오지 않았다


기왕 죽을 것에 매여 있는 동안

임종을 지키지 못한 다른 죽음들에 대해서는

또 뭐라 할는지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닌

작년을 등에 지고

걸음 떼기가 너무 힘들다


참 죽기 전에 꽃 한 번 피운다고 하던데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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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쁘다 슬프다 할 것 없고


기쁨은 추파 같아서 살살 잔웃음 지으며 흐르고

슬픔은 비중이 높아서 있는 줄 모르게 가라앉았지만

거품 걷어내듯 앙금 퍼내듯 분리수거할 것도 아니고

원심분리기로 추출할 것도 아니니까

한 사발에 말아내는 국밥이라도 드시걸랑

겨울하늘 치켜보며 잘 먹었다고 트림 한번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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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양초 말리듯 부지런해야


투명한 붉음 속에 금전 소리 쩔렁쩔렁

쨍 햇볕 나는 날만 있는 것 아니니까

널어놓았다가 거두기를 여러 번 해야

속 썩을 일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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