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힘
소리의 힘
새벽 4시에 시작한 소리는 밤 9시까지 24평 아파트를 가득 채운다.
극동방송, 기독교방송, TV
조다위 목사님의 카랑카랑한 말씀과 성도의 “아메~ㄴ" 함성으로 시작해서
그 좋은 찬양이 너무 큰 소리로 계속되니 머리만 아프다.
성(聲)고문에 시달려 맞대응하기로.
“내 영혼에 파도처럼 메아리쳐 온~다~~~”
망백의 가친께서 장탄식과 함께 하시는 말씀:
“내게는 하루가 36시간이다.”
평생 ‘놀이’라고는 해보신 적이 없으니
꼰주리를 같이 둘 수도 없고,
“그럼 저는... 다녀오겠습니다.” 물러나와
사무실로.
아, 여기도 시끄럽구나.
직원들이 새벽의 새떼처럼 떠든다.
젊으니까, 좋은 때니까, 즐거우니까.
젊은 시인들이 더 어렸을 때에 쓴 시를 좋다고 베끼다가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염치없이 나이를 많이 먹은 거지
그들이라고 ‘애’는 아니었으니까...
또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의 음악은 뭘 모르는 젊을 때 만든 거라
고약한 게 아니니까...
부패의 힘
그러니 나처럼 아 늙었구나, 녹슬었구나, 썩었구나
탄식하지 않아도 될 나이에 쓴 간접경험을 의심하지 말고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 나희덕, ‘부패의 힘’ -
부패공화국의 부패방지법 제정 취지:
부패 예방, 방지, 근절,
제도적으로 만연한 부패 척결, 발본색원.
그럼으로써 명랑, 건전, 청량 사회 건설.
그러면 좋겠다는 얘기.
안 그렇게 되더라.
갈등구조만 확대재생산.
빨리 썩어 없어지면 좋겠다.
없어질 것은 빨리 썩어야 되겠다.
시원찮음의 힘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
맞다. 못난 나무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더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 신경림, ‘나무’ -
못난 것, 볼품없는 것, 시원찮은 것들도
다 그만한 재주가 있으니 살아남았고,
산 것들은 다 제 값을 하더라.
메마른 땅에서 함께 살다보니
어느새 나무는 사람을 닮아버린 것일까,
거센 바람을 피해 언덕에 달라붙는 슬기도 배우고
돌을 비집고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재주도 익혔다.
그러느라 어깨와 등은 흉칙하게 일그러지고
팔과 다리는 망측스럽게 뒤틀렸으리라,
눈비에 몸을 맡기는 순수함에도 길이 들고
몸속에 벌레를 기르는 너그러움도 지니면서.
- ‘정월 초하루, 소백산에서 해돋이를 맞다’ -
휴우, 꼴은 그렇다 치고
어쩔 수 없이 외세에 순응한다고 치고
안에도 파멸의 시한폭탄을 품고 태연하더란 말이냐?
대단찮은 다박솔 하나라도
산다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상처의 힘
그 아저씨, 참 내, 저만 무슨‘상처’ 전문가처럼 그러시지만,
속살에 옹이 박히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으며
손 내밀어 보면 다 못 박혔더라.
생김새도 사는 것도 각양각색이라, 언청이와
혹부리가 길이 다르고, 꿈이 다르듯, 그러다가도
문득 국밥집에 들어와 석유난로에 얹은 손등을 보면 닮았다.
쭈그러진 손등의 주름이 같고, 손바닥에 박인 못이 같다.
주름과 못 속으로 팬 깊고 푸른 상처가 서로 닮았다.
- ‘손’ -
그래서 닮은 손들을 서로 잡고 흔들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그만한 뺨들을 비비게 되는 것이다.
흉터나 흠집이 밀어내는 이유가 될 수 없고.
눈과 바람을 몰아내며 눈부신 햇살이 산과 들을 밟아 올라올 때 더 아름답게 빛나리라.
너의 몸 흠집투성일 터이니.
- ‘굴참나무들을 위하여’ -
감추려들지 않더라고.
때 되면 일부러 드러내던 걸.
“나 이런 사람인데...”로 나오더라고.
지나간 모든 날들을 스스로 장미빛 노을로 덧칠하면서.
제각기 무슨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 ‘흔적’ -
그러면서 또 덮어주기를 바라기도 하거든.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등과 가슴에 묻은 얼룩을 지우면서
세상의 온갖 부끄러운 짓, 너저분한 곳을 덮으면서
깨어진 것, 금간 것을 쓰다듬으면서
파인 길, 골진 마당을 메우면서
밝는 날 온 세상을 비칠 햇살
더 하얗게 빛나지 않으면 어쩌나
더 멀리 퍼지지 않으면 어쩌나
솔나무 사이로 불어닥칠 바람
더 싱그럽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창가에 흐린 불빛을 끌어안고
우리들의 울음, 우리들의 이야기를 끌어안고
스스로 작은 울음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서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어서
- ‘세밑에 오는 눈’ -
그게 추울 때 좀 가려달라는 얘기지
좀 지나면 벗어젖히더라.
그게 그놈인 세상에 저 혼자 죄인이라고 나왔다가는
“그럼 너나 죽어봐라 내게 부담주지 말고”가 되겠지만
왕년엔 그랬잖아, “자수하여 광명 찾자”라고.
봄이 되면 나도 대지처럼 두꺼운 옷을 활짝 벗고
겨우내 감추어 두었던 보석들로 치장한 몸과 팔다리를
햇살과 바람으로 말끔히 씻어내고 싶지만, 들쳐보니
감추어 두었던 것은 누렇게 곪은 부스럼과 칙칙한 흉터뿐
그래도 나는 조심조심 내 몸에서 누더기를 걷어낸다
그 부스럼과 흉터에서 고이는 것이 맑은 이슬이 못될지라도
- ‘이슬’ -
에휴 에휴 엄살떨지만
다 그렇고 그랬구나.
그럼 다같이 건배.
“양심 불량을 위하여!”
“천연미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