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시설 수리로 10시부터 4시까지 단전된다는 방송이 있었다.
칼같이 10시 정각에 끊어졌다.
전기가 없다고 벽 속에 남지 못할 건 아니지만 나왔다.
어딜 가지? 음, 문화의 거리 인사동이면 되겠다.
낙원상가 밑 차도를 (난간을 넘어) 가로질러 찾아갔다.
“저, 인사동으로 가자면...”
“여기가 인사동인데, 어딜 가려는 건지?”
그러기를 세 번.
딱 어디를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인사동이 뭐 이래?
어느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갔던가 보다.
출구를 찾아 나오는데 경비가 불러 세운다.
“어떻게 자동차만 출입하는 데로 들어온 거요?”
“차 안에는 사람이 타지 않는가요? 어떻게 자동차만 출입할 수가...”
“뭐요, 이 사람이 정말? 불법 침입으로 고발되는 수가 있어.”
오죽 힘없는 촌놈 같았으면 그렇게 나올까?
그게 과수 댁 월장하다가 행랑아범에게 걸린 첨지처럼
아무렴 신분이야 내가 높네만, 꼴이 이러하니...
잿빛 누비옷--중 옷이라고 그럴 순 없잖아-- 걸린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저런 거 걸치면 산길 헤매도 얼어 죽지 않겠다”라는 생각도 하고,
“아니 화동 1번지 들어가는 길을 지나쳤나...” 그러다보니
노인복지회관 앞이다.
다리가 아파서 한번 들어가 볼까 망설이다가
괜히 머리에 물은 들여서... “쯩 좀 봅시다.” 하면 망신만 당할 것이다.
좀 지나니, “아하, 저게 ‘빠고다’(탑골)공원이었지.”
흠, 민족 대표 33인이 누구누구 였더라... 열 두엇 헤아리다가
“시험에도 안 나올 것, 다시 잊어버릴 것을 뭐 하러 외웠지?” 그러다가,
다시 배고파진다고 밥 안 먹나, 앎이란 시험 때문에 얻는 건 아니고...
그나저나 33년의 거리를 하루아침에 뛰어넘을 수는 없는 거니까.
옛적엔 이쯤에서 머뭇거리면 “놀다가세요”라는 은근한 초대가 있었다.
얼굴 가득 세월의 고단함이 덮여있고 고독의 무게로 쳐진 어깨를
눈여겨보는 이가 없나보다. ‘부름’이 없다.
다시 인사동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아니 뭐가 ‘문화’지? 재미있다던데...
자리잡았다는 영감님도 그러시던 걸.
인사동에 와서도 인사동을 찾지 못하는 것은
동서남북에 서 있어도
동서남북이 보이지 않기 때문
그렇게 찾기 어려운 인사동이
동은 낙원동으로 빠지고
서는 공평동으로
남은 종로 2가에서
북은 관훈동으로 사라지니
인사동이 인사동에 있을 리가 없다
-이생진, ‘인사동’-
화장실... (두리번)
맞다, 교보문고에 있다.
종각은 없어졌나,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어, 한일관은 남아있네.
시집 6,000원. 점심 한 끼 값이다.
내가 이걸 사면, 그러니까 한 끼를 굶으면
시를 게워낸 저자에겐 얼마나 돌아갈까?
내가 고르는 책쯤 내놓는 사람들이야 이제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고단했던가 보다.
잘 살피지도 않고 다섯 권이나 집어 들었다.
(한 주일 동안 점심시간에는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와서...
기러기아빠 참 치사하다.)
나오면서 전화기를 열어보니, ‘부재중 전화 1통’!
억울하다, 사흘 만에 처음 받아볼 전화를 놓치다니.
(그 부르르 떪이 더 확실할 것 같아 ‘매너 모드’로 전환시켰는데
내가 매너가 없어선지 보통 놓치고 만다.)
번호 확인 후 약간 실망.
“불 들어왔으니 집에 돌아와도 좋다.”
지하철에서 빈 자리 난 데를 두고 한 아줌마와 눈빛으로 기세 싸움을 하고는
내가 먼저 앉았다.
책 펴보다가 충동구매의 후회가 아릿한 아픔으로 치환된다.
그야 뭐 수박을 깨보고 살 수는 없는 거니까.
익지 않은 걸 억지로 떠맡긴 것도 아니고
뭘 좀 아는 듯이 한번 두들겨보고 고른 건 나니까.
겨울 날씨 같지 않게 따뜻한데도
무슨 칼바람이 에이는 날도 아닌데
눈 마주치기가 미안해서 행상 앞을 빨리 지나치며
안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바람은 그것을 밤이 오고 눈이 온다고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겨울의 견고한 사랑을 말하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하림, ‘겨울의 사랑’-
(서울 가서 돈 잘 벌고 성공한 줄 아는 고향사람들은 여기 들어와서 내 형편을 엿보지 않을 것이다.
설에는 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음에 들릴 때에는 선물 사들고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