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封手)
그냥 시간 보내려고 바둑 두는 거니까
꼭 이기겠다고 묘수를 짜내느라 장고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미적거리다 보면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는 녀석은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아함~” 하다가
쓰러져 자버린다.
무슨 기발한 신수를 개발했기로 알아줄 것도 아니고
자고 일어나서 손으로 쓸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도 싱거워져서 벌렁 눕거나 나가버린다.
이번에는 일이 있어서 나가는 거니까
외출이 길어질 것이다.
깬 다음에 황당해할 네가 안됐기에
몇 자 적어놓고 떠난다.
기다리는
- 강희근 -
세상의 반은 기다리기
또는 놓아주기
목련이 피고 버스가 가고
그림이 있는 미술관
그 앞 정류소에 기다리는 사람
보내는 사람
약속이 꽃잎으로 하늘
하늘 떨어져 내리고
새로운 버스는 왔다가 가고
봄은 이제 적어 놓은 글자
끄트머리를 지우고
끄트머리의 끝
머리카락
손가락에서 빠져 나가고
긴 침묵과 반란이 가고
세상의 반이 다 가고 기다리고
끝내는 남고 남은 것은
기다리는
시세가 많이 떨어진 다음에 어울렸기에
제 꼴은 생각 않으면서
(“나도 잘 봐주면 괜찮은 게 아직 많은 사람이야” 해가면서스리)
님과 남의 중간쯤 되는 이의 흉만 눈에 띄더라도
“이 나이에 그만 해도 과분한 거지”라며
아니꼬움 억누르며 만남이 이어지는데
(휴화산이 어쩌다가 용암 뿜어내는 빈도로)
헤어질 때 서글픔은 치사해서 감출 것이라면
만나서 반가움은 왜 드러내지 않느냐고
(다시 만난다면 말이지)
뭘 몰라서 아직도 중얼중얼.
(딱 떨어지는 순간에 잡혔다.)
그에게
저어, 들릴 리 없겠지만...
나 좀 오래 있다 올 거야.
배달하는 분들께
나중에 뭐라 안할 테니
그냥 공중분해 시키세요.
(아, 그 ‘공중분해’라는 말?
왕년에 군대에서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고 까서 흩으라는...
또. 그 왜 바람도 없는데 수직의 파문을 그리며 떨어지는 목련꽃잎,
그 큼지막한 것들이 후드득 공중에서 해체되고 마는,
기도 안찬다 고마.)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