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1


    사랑해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도 아니고

    그대는 내 사랑이라고 선언한 것도 아니지만

    어느 때, 어떤 자리, 그러니까 둘러선 히말라야 병풍에

    떠오르는 해가 금촉 화살을 억수로 쏟아낼 즈음이면

    산울림으로 남겨놓고 싶은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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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여기 올는지

    그때까지 그대 이름 남아있거든

    (지나가는 바람 속에 제 이름이 들어있는 것 같거든)

    나를 당신이라고 불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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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그러더라.

어렵게 시작해서 힘들게 계속된 여행이었지만

끝 무렵엔 괜찮았다.


아, 해뜨기 전 잠간이 가장 어둡다는데,

그냥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사실 나 많이 아팠어.

뻐개지듯, 쥐어짜듯, 그리고 오슬오슬 떨었지.


기쁨은 아픔과 함께 오는가,

아픔 중에도 기쁨이 있었다.

(그건 기쁠 때 하는 얘기. 

아주 많이 아프다면, 기쁨 안에도 아픔이 있다고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야단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라고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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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밤은 카트만두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데에 있는

나가르콧에서 쉬게 되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전망대 호텔이라고 부르는 곳이라 그런지

히말라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 보인다는 얘기가 아니고 일부 준봉들의 꼭대기가 보인다는 건데,

그래도 랑탕, 가네쉬트, 마나슬루, 아나푸르나 같은 유명한 이름들을 식별할 수 있다.

에베레스트, 다울라기리는 보이지 않는다.)

 

고산지대에 가리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두툼한 옷을 준비하지 않았다.

일몰과 함께 추위가 다가오니 내장과 뼈가 시린 것 같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고...  내 어찌 이 밤을 그냥 자랴

해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베란다에 나와 있다가

그믐을 향하여 몸집을 줄이며 나아가는 달이 떠오르자 나와 걸었다.

달빛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  무슨 뿌연 기운 같은 게 있어서 아주 캄캄하지는 않았지만.

두어 번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한번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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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도 길은 있으니까 길로 가면 될 것이다.

처음엔 산짐승이 다녔겠고

(길道은 사슴의 머리首와 발足이 합한 글자가 아닌지...)

그 짐승들을 따라다니는 사냥꾼들도 밟았을 것이고

나중엔 나무 짐 진 이들이 그리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렇게 다니다가 무서울 때쯤 되어

주저앉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선다 싱처럼 아주 사라지면 어떡해,

해서 ‘동료’와 ‘문명’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때쯤 되어

병풍 뒤로부터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다 욀까, 제대로 기억할까...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뙨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뙤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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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밤새도록 어둠 잡아먹었니?

그래서 벌겋구나.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그래 나 그랬지.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그건 좀...

무엇과 있으면 홀로가 아니게?

“너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다 없어도 좋아”라는 뜻이겠는데,

그것도 그래.

‘엘비라 마디간’ 봤지?

당장 배고프지, 게다가 쫓기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거든.

그래서 정사(情事, to live together)는 보통 정사(情死, to die together)로 끝나더라.

그게 보통 사건의 종말이더라.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은... 홀로래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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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르지만 아직 골짜기까지 빛이 침투하지 않았을 때에

작은 산들은 꼭대기만 조금 내밀고 안개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고

내 발 아래로 보이는 사람 사는 골짜기들이

깊이에 따라 고고학적 발굴 단층처럼 빛깔들의 스펙트럼을 이루었다.

(색 이름을 몰라서...)

metallic silver, ash grey, milky white, cream(연유), ivory, 담묵,

조선 여자 살색, 삼, 밤, 옻...

조금 지나니까 계단식 논밭, 풀, 나무, 흙, 바위, 색깔이 제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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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눈의 집)를 이루는 영봉들뿐만 아니고

저 모든 것들, 이리저리 둘러보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그게 그냥 ‘그것’은 아니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고,

해서 ‘절대타자’ 한 존재에게만 신성(神性)을 부여한다는 게

오히려 억지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거든.

이런 데서 오래 살면서 유일신 신앙을 가지라는 게

그게 될 성 싶지 않거든.

만물이 신성(神聖)한데.


아, 열이 나고 졸렵다.

그럼 한 잠 자고 나서 나중에 보자고.

(내일이 있겠지 뭐.)

나마스테!


(‘나마스테’는 히브리어 ‘샬롬’, 우리 말 ‘안녕’에 해당하는 인사말이지만

본뜻은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내가 경배합니다”이다.  합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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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찾자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