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2
네팔은 그냥 스쳐지나간 곳이다.
예하 부대 검열한다고 나온 고급 장교가 “계속해서 충성하기 바란다”라고 훈시하고 떠나듯,
지나친 동네 이름들을 수첩에 깨알박이로 적어놓듯
그런 길이었으니까
뭘 안다고 떠들어대겠는가?
그냥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에 가서 여러 날 있겠다는 사람에게
“내 몫까지...”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박범신의 <나마스테>(한겨레 출판사)정도는 읽고 가라고 귀띔 한 번 하는 거지.
![AAA2[8].jpg](https://s3-us-west-2.amazonaws.com/mksbal-public/imgs/mksbal_928_2006-01-25/AAA2%5B8%5D.jpg)
처음엔 어색해 그냥 걷기만 하던 내 입에서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나마스테’가 흘러나왔다. 굿모닝도 없었고 안녕하세요도 없었다. 세계의 모든 언어가
다 소멸되고 단 하나 ‘나마스테’가 남은 것 같았는데, 이상한 것은 입 속으로 우물거리듯이
나마스테…고요히 말하고 나면 그때마다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짐 실은 나귀떼의 방울 소리만 앞에서 들려도, 나마스테…하고 인사했다.
- 박범신, ‘나마스테’ -
![AAA3[9].jpg](https://s3-us-west-2.amazonaws.com/mksbal-public/imgs/mksbal_928_2006-01-25/AAA3%5B9%5D.jpg)
그건 주제 모르는 한국인들이 상전인 양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발도 아니고
(집필 동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면 좀 아릿하고, 서늘하고 그렇겠네.
사랑이라고 격렬함만 있는 게 아니잖아?
결국 그건 환향(還鄕)과 귀일(歸一) 같은 걸 거라.
그러니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로 돌아간다는 얘긴데,
“가보니 뭐가 있더라, 정말 그렇더라.”이면 happy-ending이게?
가보면 그래. 그렇지만 한번 가봐.
샹그릴라도 그런 거지 뭐.
무릉도원, 유토피아(U-topos)처럼 “그런 덴 없다”라는 뜻이겠네.
여전히 못살고 여전히 황량한 데지만,
외적 환경에 상관없이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거기가 낙원이니까.
가져야만 즐길 수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문화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가볼 만한 순례 성지이겠네.
![AAA10[2].jpg](https://s3-us-west-2.amazonaws.com/mksbal-public/imgs/mksbal_928_2006-01-25/AAA10%5B2%5D.jpg)
                         ![AAA9[1].jpg](https://s3-us-west-2.amazonaws.com/mksbal-public/imgs/mksbal_928_2006-01-25/AAA9%5B1%5D.jpg)
그리고...
사랑이 잦은 사람, 사랑이 우습게 여겨지는 사람,
그래서 “아냐, 이번에도 아냐”라는 사람에게 묻고 싶어.
“너는 그렇다 치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럼 어떡하란 말이냐?”
실은 그런 질문 앞에서 결심이 무너지고 또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사랑 아닌 줄 아니까
시시하게 사라지고 말더라고.
그러니 그 단호한 태도 표명이 언짢게 보임은 좀 그렇지만
사랑이 아니라는 데야 어쩌겠냐고.
그게...
사람이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고
사랑 안에 거하면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간다?
그래도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는가?
![AAA7[6].jpg](https://s3-us-west-2.amazonaws.com/mksbal-public/imgs/mksbal_928_2006-01-25/AAA7%5B6%5D.jpg)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황동규, ‘쨍한 사랑 노래’ -

이렇게 끝내기가 뭣해서 한 짐 더 쏟아 부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