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2
네팔은 그냥 스쳐지나간 곳이다.
예하 부대 검열한다고 나온 고급 장교가 “계속해서 충성하기 바란다”라고 훈시하고 떠나듯,
지나친 동네 이름들을 수첩에 깨알박이로 적어놓듯
그런 길이었으니까
뭘 안다고 떠들어대겠는가?
그냥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에 가서 여러 날 있겠다는 사람에게
“내 몫까지...”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박범신의 <나마스테>(한겨레 출판사)정도는 읽고 가라고 귀띔 한 번 하는 거지.
처음엔 어색해 그냥 걷기만 하던 내 입에서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나마스테’가 흘러나왔다. 굿모닝도 없었고 안녕하세요도 없었다. 세계의 모든 언어가
다 소멸되고 단 하나 ‘나마스테’가 남은 것 같았는데, 이상한 것은 입 속으로 우물거리듯이
나마스테…고요히 말하고 나면 그때마다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짐 실은 나귀떼의 방울 소리만 앞에서 들려도, 나마스테…하고 인사했다.
- 박범신, ‘나마스테’ -
그건 주제 모르는 한국인들이 상전인 양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발도 아니고
(집필 동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이야기이다.
그러면 좀 아릿하고, 서늘하고 그렇겠네.
사랑이라고 격렬함만 있는 게 아니잖아?
결국 그건 환향(還鄕)과 귀일(歸一) 같은 걸 거라.
그러니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로 돌아간다는 얘긴데,
“가보니 뭐가 있더라, 정말 그렇더라.”이면 happy-ending이게?
가보면 그래. 그렇지만 한번 가봐.
샹그릴라도 그런 거지 뭐.
무릉도원, 유토피아(U-topos)처럼 “그런 덴 없다”라는 뜻이겠네.
여전히 못살고 여전히 황량한 데지만,
외적 환경에 상관없이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거기가 낙원이니까.
가져야만 즐길 수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문화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가볼 만한 순례 성지이겠네.
그리고...
사랑이 잦은 사람, 사랑이 우습게 여겨지는 사람,
그래서 “아냐, 이번에도 아냐”라는 사람에게 묻고 싶어.
“너는 그렇다 치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럼 어떡하란 말이냐?”
실은 그런 질문 앞에서 결심이 무너지고 또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사랑 아닌 줄 아니까
시시하게 사라지고 말더라고.
그러니 그 단호한 태도 표명이 언짢게 보임은 좀 그렇지만
사랑이 아니라는 데야 어쩌겠냐고.
그게...
사람이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고
사랑 안에 거하면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간다?
그래도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는가?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황동규, ‘쨍한 사랑 노래’ -
이렇게 끝내기가 뭣해서 한 짐 더 쏟아 부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