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3

 

오늘 친구의 회갑 생신이라고 저녁에 모인다는 기별이 있었다.

생일도 모르는 사이가 친구라?  그게 우정을 시작하고는 삼십삼 년을 떨어져서 살았거든.

그러고는 그가 불러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러니 ‘잠시’--얼마가 될까...-- 떨어져 있게 된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취미가 공부--쿵푸의 뜻으로--인 사람을 책상머리에 앉혀놓고 생활비를 준다니 참으로 고맙지 뭐.


그는 ‘Good Neighbors’ 회장이다. 

세계적인 아동구호단체의 한국 지부쯤 되는 데--지금도 그런 류로는 가장 알려진 이름일 것이다--에서

일하다가 뭘 모르는 저명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하여 무능 무효한 운영이 관행이 된 구조에서 개혁을

시도하다가 퇴출되어 시작한 것이 ‘이웃사랑 회’이었다.

동지 8명이 퇴직금을 모아 눈물 뿌리며 시작한지 15년 만에 이만큼 자랐다.

한국 토종 복지 재단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현장에서 자라고 살아남으면서 사회 복지와 긴급구호 및

대북 지원 측면에서 그만큼 아는 다른 CEO가 있는가?

(내가 가시 같은 존재인 줄 알면서 유아독존 격인 그의 전횡을 막아달라는 양심의 파수막으로 나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 찌를 것이야.  그게 내 취미라서가 아니고.) 


 

  AAA11[1].jpg  AAA1[10].jpg

       이일하 Good Neighbors 회장... 

       "오래 건강하며 끝까지 초심으로 충성하기를.  가난한 이웃들을 주님 섬기듯 하기를 기원하며."

 


Good Neighbors 네팔 지부의 사역자들은 선교사의 신분으로 파송되어 이미 현장 경험을 오래 쌓은 분들이다.  복음주의--아주 ‘찐한’--선교회의 ‘전투적’ 공략으로 훈련된 분들이라서 염려가 없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보는

그들의 사역은 효과적이고 감동적이었다.  NGO적 접근이면서도 ‘잃은 자(lost)’를 찾으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섬기는 분들이다.

(어쩌면 그리도 현지어에 능통한지.  나는 미주에서 만 32년을 살았지만, 한국어만 조금 할 줄 안다.)


카트만두 교외의 빈민촌인 버디켈과 샹글라에 어린이집과 초등학교(학생 전원 hostel에서 기숙)를 지어

운영하는데, 학생 선발 등 관리는 지역 자치회의 몫이다.  시내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직업훈련센터--

컴퓨터, 호텔경영, 외국어 훈련--를 열고 있다.

 

 

AAA2[9].jpg

                                    기숙학교 착공식, 멀리 히말라야가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서

 

 

가장 최근의 사역으로는 아주대학교 자원봉사 팀의 손발을 빌린 화장 시설 건립이다.

응, 선교사가 가서 한다는 게 이교의 화장터나 만들어 준다?

그게 좀 설명이 필요하겠다.


파슈파티의 힌두교 성지를 방문했다. 

거기에 조그만 개천--애개...--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물 갠지스 강의 원천 중의 하나이다.

힌두교도는 사후 화장되어 갠지스 강에 씻겨 흘러가는 것을 지복으로 안다.

마침 방문한 날 네팔의 인기가수의 장례가 있어서 TV 현장 중계까지 있었는데,

‘구경꾼’이 많았다 뿐이지 슬퍼하는 이들이 없다.  

그야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믿는 문화/종교 권에서는 죽음이 ‘끝’은 아닐 테니까...

이생이란 이어지는 전환(transformation)의 한 단계일 뿐이니까.

죽음은 더 나은 삶으로 비약, 진입하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한국에서는 몸부림치며 울던데...)

 

AAA3[10].jpg

 

AAA7[7].jpg

 

AAA5[6].jpg

 

AAA8[3].jpg

 

AAA4[7].jpg

 

AAA9[2].jpg

 

 

그게 좀 그렇다. 

도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양념 없이 타는 고기 냄새 같은...

도무지 엄숙, 장려의 분위기가 아니고, 다들 무덤덤...

곱게 빻지도 않고, 그냥 잘 타지 않은 숯들이 가래에 밀려 개천으로 떨어진다.

흰 천에 쌓이고, 발 께를 물로 적시고, 꽃을 좀 뿌리기는 한다만...

삶의 매듭이랄까, 선물의 포장이랄까, 그런 부분이 서운할 정도로 소홀하다.

(그것도 고등종교의 의례인데, ‘내 표준’으로 함부로 말할 건 아니지만...)


그러면 화장시설을 지어준 뜻으로 돌아가서...

그나마 천민계급은 앞서 소개한 곳에서 화장할 수 없다. 

그들은 죽음의 예식조차 천대받은 삶에 어울릴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치러져야 한다.

이름모를 산골의 개울가에서 적당히 치러야 하는데, 우기에는 불을 지피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뭐 큰 시설은 아니지만, 지붕과 벽이라도 있는 데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들과 삶을 나눈다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의 없겠지?


‘무심하다’는 말은 냉정하다는 뜻 만으로가 아니라

무익한 감정의 낭비 없이 있는 것--있을 것이니까 있게 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이 때로 무심하기도 해야 될 것이다.  생사의 대해에서.

 

 

AAA12[1].jpg

                                                             이 사진은 네팔의 풍경은 아니다.



운명에 인종(忍從)함을 대단한 미덕으로 여기지도 않고 그냥 삶의 길인 이들에게도

체제를 둘러싼 갈등은 있다. 

아직도 왕정(王政)하인데 민주화를 추진하는 세력을 분쇄하려고 계엄령을 선포한 상태인가 하면,

국토의 7할 정도는 모택동(Maoist) 게릴라들이 장악하고 있다.

피 뿌림이 없으면 좋겠는데...

한때 인류 최후의 평화 성지로 히피들이 찾았던 곳, 힌두교와 불교의 발상 성지,

그리고 세계의 지붕인 이곳 네팔, 그리고 네팔 백성에게

합장하여 “나마스테.”

나귀의 방울 소리, 대숲을 빠지는 바람 소리로 화답하는 “나마스테”.

 

 

AAA10[3].jpg

 

AAA6[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