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가 합력하여

 

설 연휴가 괴롭다.

사무실 문을 닫으니 갈 데가 없다.

집에 있자니 어른께 세배한다고 방문하는 손님들과 인사해야하고,

나가면 돈, 게다가 아직 배탈 난 게 곱게 끝나지 않은 상태라서...

한국인들은 왜 그리 오래 놀고 많이 쉬지?  에휴~

금, 토, 일, 월, 화, 중에 하루쯤 나 데리고 놀아줄 사람?

 


베트남에서 시작하는 여행의 첫 밤을 나는 불법입국자 억류소에서 보냈다.

학창시절 닭장차, 몇 시간의 구류가 구속 체험의 전부이었는데...

이렇게 된 얘기.

한국과는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나는 C국의 여권 소지자이기에 비자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첫째로는 여행사 직원, 둘째로는 내가 일하는 곳의 담당자, 등이 챙기지 못했고,

셋째로는 입국비자가 없으면 태우지 말아야 하거늘 항공사에서도 그냥 보딩 패스를 내줬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까지 동원되는 것인데,

나 한 사람 망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짜고 덤빈 것인지, 내 원, 참말로...


사회주의 국가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부터 국방복을 입었고...

“한 시간 후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돌아가시오.”

어떡하란 말이냐?  일행도 있고, 이틀 후에는 태국, 다음에 캄보디아, 네팔로 줄줄이 이어지는 여정을...

“나 여기 무슨 ‘국립 호텔’ 같은 데서 이틀 자고 떠날 수 없을까? 

그동안 강제노역에 동원해도 좋고...”

“이 사람이 하나도 우습지 않은 소재로 웃기려고 하네, 안돼!!!”

세 시간 협상 끝에 수용소 격인 공항 내 호텔에 가게 되었다.

말이 ‘호텔’이지, 무작정 상경한 청춘이 허가 맡지 않은 살림 차리던 산동네 옥탑방 같은...

하여 베드로는 옥중에 갇히고 형제들은 기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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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서 하루를...

 


다음날 오후 세시 좀 지나, 현지에 심어둔 비선 조직의 노력으로 풀려났다.  험험.

일행을 찾아 두 시간을 달리다가 흙먼지 날리는 고갯길에서 만나 하노이로 돌아왔다.

대우호텔.  촌놈은 이런 굉장한 데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아니, 동료가 갇혀 있을 때에 그대들은 이런 아방궁에서 하룻밤을 보냈더란 말이냐?

주지육림? ...은 아니겠지만...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었다?

그런 게 아니고,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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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 출근길의 모토사이클 행렬

 


 

그랬구나.

뭐가?

건성으로 지나갔던 말씀 몇 구절이 떠올랐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 5)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시 66: 6)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 37)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 12)


까짓 하룻밤쯤 불편했던 것을 불려서 떠벌리려는 것이 아니고,

잠시라도 파상(破傷)한 마음을 주심이 감사하다는 뜻이다.

향은 곱게 빻은 다음에야 사를 수 있고 밀도 부셔져야 빵을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섬김의 삶을 살기 원한다고 하면서도 파쇄(破碎)되기를 두려워한다.


나는 26년 간 parish ministry에 매여 있으면서 사역의 기쁨이 없었다.

꼭 월급쟁이 고용사장 같았다.  해서...

벤처기업 창업주를 꿈꾸었는데...  당장 생계유지가 안 되더라는 얘기.

삼 년째 건강보험 없이 살고 있다. 

(어떻게 보험료가 식비의 몇 배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미국 사정.)

아내가 아프다고 그러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어려울 때 아프다고 그러면 어떡해?

믿음 있으면 아프지도 않아.  어떻게 좀 참아봐.” (웃기자고 하는 얘기.)

아무튼, 외상엔 아까징기, 속 아플 땐 구아네찡, 그걸로 다 해결되던 시절처럼 살았다.


“좀 기다리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지 않나.” 그런 얘기가 아니고,

새옹지마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도 아니고,

지금은 잘 모르지만,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런 대로 고백할 만하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 33)  


또 있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 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모든 것들이 제마다 조금씩 보탠다는 뜻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합해졌을 때에야 선을 이룬다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겠다.

그러니, 백 가지가 들어가야 할 것에 95 가지가 들어갔다면, 아직은 아니겠네.


지금은 아니네.

언젠가는.


그 날을 늘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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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후에 빛이 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