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라고 하늘이 노란 건 아니었다
캄보디아를 프놈펜이나 앙코르왓의 공항을 통해서 들어갔다가
관광이나 볼 일 보고 나온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못 사는지 잘 모를 것이다.
태국이라고 잘 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산차 하나 못 만들어내고 IT 산업이 없는 셈치고는
그만해도 아주 괜찮은 편이다, 캄보디아에 비하자면.
딱 국경을 넘어서면, “아휴... 이렇게 못 살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 느낌.
예전에 역전이나 시장에서 지게꾼들을 본 적이 있겠지?
장보따리로는 터무니없이 큰 짐을 일 수도, 질 수도 없어서 지게꾼을 부르고는
저들도 못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 짐삯을 깎기도 하고 그랬다.
몇 짐이라도 날라야 보리쌀 한 봉지, 꽁치 두 마리쯤 들고 갈까 말까 정도.
공치는 날도 많았고.
거기 캄보디아에는 리아까(rear car)꾼들이 많았다.
저들이 나를만한 물류유통이 없는 데도.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 보니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라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 라고 말하였다.
(마 20: 6, 7)
관념/종교로는 윤회사상, 체제로는 사회주의, 그 둘이 합한 나라는 도저히 잘 살 수가 없다.
저들은 부자에 대한 증오가 없다. 부자는 전생에 선업을 쌓아 잘 살게 된 것이니까.
뭐 이생에서 희망이랄 게 없으니까 그저 차생에서나 팔자가 바뀌기를 기대할 뿐.
안경도 해주고 집도 지어주었다.
네 식구의 나이를 합치면 내 나이 숫자에 미칠는지...
할 일 다 하지 못할 정도로 바빠서 지붕만 해주면 벽은 그대로 둔 채로 산다.
‘Good Neighbors’ 캄보디아 지부장인 이동명 목사님은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선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뒤늦게 신학교에...
그 후 잘 나가는 목회도 집어치우고 캄보디아 오지로. (아주 드문 얘기는 아니지만.)
이순의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정력적이고 일만큼 삶을 즐길 줄도 아는 분이다.
염소만한 송아지가 먼지 뒤집어쓴 바나나 잎을 뜯고 있다.
마침 지원하는 두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있는 날이다.
Good Neighbors는 학교 건물을 보수했고, 수백 명 학생들에게 매일 급식한다.
한 아이 당 150원 정도.
그러니 100원 짜리 동전 귀하게 여기시기를.
KT & G (‘담배인삼공사’, 더 좋은 이름이 있다는데 아직 이쪽 형편을 잘 몰라서) 봉사단이 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새 티셔츠라도 입히니 보기가 낫다.
나이든 이들이라면 소학교 시절의 대운동회, 소운동회 추억이 있으리라.
그때 그까짓 미루꾸 한 곽, ‘賞’자 도장 찍힌 공책 한 권 얻기 위하여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뛰었지. 테이프를 눈앞에 두고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 아픔보다 상을 놓친 억울함으로 울기도 했고.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고전 9: 24)
저 사원에서는 뭘 하는지...
그 아이들에게는 ‘편’이나 ‘릴레이’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아서
편에 상관없이 먼저 들어오는 아이의 바턴을 빼앗아 뛰기도 하고
넘겨주지 않고 저만 뛰겠다는 아이도 있다.
아, 오자미 던지기.
하도 바구니를 단단히 만들었기에 잘 터지지가 않았다.
결국 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반칙을 저지르고야 터져서 사탕이 쏟아지게 되었다.
응, 저 만국기 펄럭이는...
우리에게도 뭐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그때 몇 끼 굶은 애들은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고 그랬다.
형편이 좀 나은 애들은 산토닌(회충약) 먹었을 때에 하늘이 노랗다고 그랬다.
덥지만, 흙먼지 이는 운동장이지만,
눈을 들어 보니 하늘은 파랬다.
세상에 노란 하늘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얘들아, 너희들은 저 마르고 누런 땅 보지 말고 파란 하늘 보며 살아라.
파란 마음 품고 파랗게 자라라.
어디라도 꽃은 있더라. Mimosa tree에 Burganvila가 기어올라가 꽃을 달았다.
학교 뒷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