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혼자 있기가


백석, 그가 그랬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여우난곬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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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백의 연세라고는 하나 평생 믿음을 지키고 가르치신 어른께서

어쩜 그리 외로움을 타시는지

속상할 지경이었다.  (믿음 그거 말짱 도루묵?)

지난 삼십여 년 간 큰 명절인 설날(구정) 분위기를 모르고 살다가

홀로 계신 가친을 모시겠다고 온 나도 음~ 쓸쓸하네?

왜 그러지?  황당해졌다.

이런 날은 북적대야 하는 건가 보다.

‘집’이 어딘지...

아무튼, 모레 돌아간다고 전화했다.

 

(여기 오래 살 것이면 명절에 같이 지낼 기러기아빠들 모이라고 신문광고라도 낼까 한다.) 


 

그래 백석.

그의 ‘모닥불’은 왕년에 민중 화가들의 ‘대동 굿’ 판화 같지도 않으면서

일정 때 씌어졌음을 염두에 둔다면 무지 선동적인 셈인데,

이제야 뭐 그럴 것도 아니고,

그저 슬그머니 웃음 한 자락 달리도록 정겨운가 하면

하품 끝에 묻어난 한 방울 때문에 “응, 그랬던 건 아닌데...” 싶어 당황스럽기도 해지는

아주 고운 장면이다. 


올여름엔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졸라대는 눈이 초롱초롱한 애들과

모깃불 피우고 멍석에 눕는 저녁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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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하는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나이 들어선지 뭘 부르짖는 사람들 보면 머리가 아프지만

정직하게 ‘중단 없는 진보’를 추구한다면 박수를 쳐줘야 되겠지.

집권 말기의 버티기와 대권--그게 뭐지? 왜 그렇게 부르지?-- 경쟁으로

눈살 찌푸려지는 일들이 더욱 늘어날 공산이 크지만...

누가 ‘모닥불’로 어우러지는 마을 이루기 같은 것 하자고 그러면 좋겠다.

(목에 핏대 줄 세우며 외칠 건 없고.)


이런저런 것들 불 속에 집어넣고

(못나고 볼품없고 시시하고 닳아빠지고 여리고 가냘픈 것들도 다 쓸모 있다니까)    

일없이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을 만들고

생명과 정을 지닌 존재들이 불가에 둘러서서

지배와 차별과 소외 없이

나는 나고 너는 너지 내가 너는 아니지만

너와 나가 우리가 되다보니

“어, 다 우리잖아?” 라는 느낌이 느낌표 없이도 따스함으로 스며드는

그런 세상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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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기분 내느라 마이크 잡은 김에 한 곡만 더 부르겠음.


      눈이 내리는 마을에

      친구의 동생이 살고 있다


      아들을 보고 오빠 오빠 부르는 팔순 노모

      제비 주둥이 벌리는 마른 입에

      더운 물 말아 밥 넣어주는

      내 친구의 동생이 살고 있다


      친구는 가고 없고

      그의 어린 조카들이 우리 어릴 때처럼

      눈 내리는 대숲길을 달리고 있다


      치매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내 친구 동생은

      우리 엄니 노망들었어

      노란 이 드러내고 웃으며

      어린아이 안듯 어머니를 요강에 앉힌다


      친구는 가고 없어도

      그의 몸 냄새가 묻어나는 시골집

      맨드라미 장독에 눈이 쌓인다


        -정군수, ‘눈이 내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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