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석

 

1


이제는 제 짝들을 찾지 못해서 그렇지 다 자란 데다가 떨어져 사니까
온 식구가 같이 여행할 기회가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게 그렇더라, 돈이 있을 때--있었나?--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어서,

가족 여행이라는 걸 별로 해보지 못했다.


어쩌다가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심야 특별 요금(red-eye special)을 이용했다.
"저, 기내식은 언제 나오나요?"
--인석아, 그런 게 없으니까 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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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통사람이니까 '일반석'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돈이 있다고 낭비할 것도 아니니까 'economy' class이면 됐다.
체면층(prstige class)이나 최상층(first class)에 속하지 못해서 억울할 것도 없고.
(꼭 제 돈 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황0석, 박찬0 같은 영웅들은 평생 최상석으로 대접한다고 그랬다는데,

지금도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꿈에도 소원은~"은 아니었지만,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보게 되었다.
꼭 가야할 시간대에 좌석이 없어서 업그레이드로, 대신 구렁이 알 같은 마일리지가 뭉텅 잘려나갔다.
일행들은 윗도리를 벗어 척 내주는데, 저런, 나는 얇은 잠바를 걸치고 있는 바람에 그런 시중도 못 받았다.

마침 배가 아파서 음식도...
좋더라.  넓어서.

 

3


주일학교 교사 시절(40년 전)에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천국은 하와이보다 더 좋아요?"
"글쎄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만 32년을 살았지만, 오가는 길에도 들려본 적이 없어서 그 대답은 아직도.
그야 비길 수가 있겠는가 마는.

 

4


'목회 성공 세미나' 강사로 온 ㅁㄱ사ㄴㅁ이 그랬다.
(아래아 모음 지원이 안 되어 글짜가 이상하게 돼뿌럿네잉.)
"나는 일등석 아니면 안 타.  여러분들도 일등석 타는 종님이 되려면..."
--어휴, 이 차이콥00야, 일등석 타는 게 목회성공이냐?
글구, 주인님/ 종놈이 맞지, '종님'은 또 뭐냐?
느그들 때문에 그분은 늘 종으로 남아 계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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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래서 그런지,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힘들게 사는 분들이다.
나처럼 "돈은 많은데 쓸 시간이 없어서..."라며 수십 년 동안 한국에 한번 다녀오지 못한 분들도 있다.
"KAL에서는 비빔밥을 내주는데, 거기 짜 넣는 고추장이 참 맛있더라"는 말에도 눈을 반짝이는 이들.
십 년 만에 다녀온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그랬다.
"지금 대한민국--한국이라고 안 그러고 꼭 '대한민국'이라고-- 가보면 많이 놀랠 거야."
내게 누가 물었다.
"청계천이 어떻게 생겼어요?"
난 옛적에 수표교도 밟았다만...
"그렇지요 뭐, 개천은 아녀요."

 

6


교인 한 분은 업무로 출장이 잦았다.
회사에서 그만큼 대우를 해주니까 그렇겠는데, 늘 일등석만 타고 다닌다.
(요금이 일반석 x 2 x 2 라며?)
"먹는 건 참 잘 줘요.  캐비알에 송이버섯 등...  그렇지만 전 안 먹고 그냥 잡니다."
괜히 심통이 나서 난 그랬다.
"아니 멸종 위기라는데 아직도 철갑상어 알을... 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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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제 또 태평양을 건너오는데... 참 길다.
일반석...
음,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구나.


만원.  용케 통로 쪽이 걸렸는데, 옆자리까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이제 5분만 지나면 문을 닫을 것이고, 옆은 빈자리로... 제발...
그런데, 팔뚝이 내 허벅지 만한--다른 신체부위 묘사는 검열에서 삭제-- 아줌씨가 들어오는 것 아닌가.
불행한 예상은 보통 적중하더라. 
엉덩이를 내 코에 비비며 들어와 앉는다.
몸매에 어울리는 체취 때문에 이내 골치가 지근지근.
이륙 후 시트벨트를 풀어도 되자 일어나 빈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마땅한 데가 없네?
내 자리로 돌아가 앉으려는데 그녀가 눈을 확 치켜 떴다.
나는 황급히 눈 깔고 떠났다.
믿음의 기도는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다는데, 산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비켜야 하겠지.


스튜어디스의 도움으로 새 둥지를 찾았다.
비록 맨 뒤, 화장실 바로 앞이긴 하지만, 옆자리는 비었다.
가끔 할머니 스튜어디스가 쉬느라 앉으면서 이야기를 걸었다.
두어 차례 술을 권했다.
(그런 거 말고 뭐 딴 건 없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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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일반인.
너무나 평범한 외모와 체구, 스치고 지나가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그리고 생각도.
수입은?  국민 전체 평균(median)으로 치면 '보통'이다.
일반인은 일반석에.  유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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