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주의보
젖는다는 건 유쾌하지 않다.
불편하고.
때리듯 쏟아지는 장대비에 옷 속으로도 도랑이 흐르듯 할 때뿐만 아니고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스며들어도 기분 나쁜 건 마찬가지.
몸에 달라붙음, 어기적어기적 걷기, 질척, 척척, 축축, 눅눅, 곰팡이.
쿨(cool)하다는 건 놀되 젖지 않는 것?
쨍한 날 피크닉 하듯, 그리고 싹싹하게 헤어지기.
2005년 텍사스 겨울.
건조주의보 내렸지만 들불이 크게 번져 여러 곳이 재해지역으로 선포되었고
가뭄이 계속되니까 소들이 뜯어먹을 풀이 없어 부쩍 말랐다.
볕 나는 날만 계속 되면?
전국토의 사막화.
우리 사는 동네가 황폐해진 건
모두들 젖기 싫어하기 때문.
젖은 눈 없이 사랑할 수 있으랴.
"Gather my tears into your bottle" (Ps.56: 8).
(고대에는 '눈물 단지'라는 게 있었다.)
내 한 방울 네 한 방울로라도 시작하면
처음은 미미하더라도 장차 커질 것이며
마른 땅에 샘이 터지고
사막에 물이 넘쳐흐르리라.
스밈, 젖음, 번짐, 퍼짐, 흐름
그렇게 나아가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