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다가 잠간

 

(로비에 있는 컴퓨터가 마침 비었기에 잠간.

서둘러 몇 자 적는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그런 거 있지?

어디 북간도 갔겠니

좋은 길 승용차로 다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이라서...


안면도.

(이름은 그렇다만 난 한잠 자지 못했다. )

성나면 그런 소리 내는 것일까

바다는 밤새도록 으르렁거렸다.

그런 때에 나돌아 다니는 게 아니지만

누가 날 부르는가 홀린 듯 나왔다.

고행이 수덕의 길은 아닌데도

맨발로 굴 껍질 깔린 모래밭을 밟고 싶었다.

그 정도까지 안하더라도...

날아가는 줄 알았어.

입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이 뱃속을 써늘하게 식히고

머리 속이 하얘지는 것 같더라.

위험지역을 넘어온 거품이 몸을 덮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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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분명히 어두운 하늘, 눈내릴 때 찍었는데,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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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새었는데

하늘은 뚫린 채로 눈은 계속 쏟아졌다.

오늘 덕산에서 직원 연수회가 있는데,

280명쯤 전국 각처에서 올 텐데

날씨를 두고 기도한 적 별로 없었지만...

천수만을 지나는데

이건 fade-in도 아니고

단번에 slide 한 장 탁 넘기듯이

쨍 햇볕 쏟아지며, 파란 하늘, 은빛 바다, 그리고 눈 덮인 산들,

고맙게도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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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바른 창가에서 말끔히 닦아놓은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바깥세상이 추운 것 같지 않다.

야외온천 풀에서 한 가족 네 식구가 소란 떨며 논다.

벌써 눈이 녹네.

지치고 바랬지만 그래도 파란 솔잎과 누런 잔디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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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그래, 가리거나 덮어도 숨기지 못하지.

기침?  가난?  사랑.

시치미 떼도 사랑이 옴을

애썼지만 사랑이 감을.

 

우유, 생선, 두부처럼

사랑도 유통기한이 짧더라.

해외의 한국식품점에서 라면 유통기한을 지워버리던데,

변질된 지 오래된 것을

“죽음이 우리를 가를 때까지”에 묶여

속이더라고.

유통기간이 길다고 영원할 것도 아니고

‘지속성’이 가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닌데

“변치 말자”는 약속은 또 뭔지?

 

그래도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너무 늦은 듯 하지만...

“살면서 잘한 일이라고는

그대를 택하여 ‘우리’라고 불러본 것 한 가지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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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음의 흐름대로 맡겨둘 시간이 아니었구나.

나 지금 들어가야 해.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