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날 일기
대학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제자를 납치하듯 끌고 가시는 선생님의 인도로
북한산 뒷길로 갔다.
딱 우리 넷만 받은 4,500 평 정원의 식당에서
비싸지만 맛은 그저 그런 음식을 먹는 동안
선생님은 기분 ‘이또’가 되어 일일이 먹는 법까지 가르쳐주시며
(성가셔라, 입으로 들어가면 되지 뭐.)
박식을 뽐내셨다.
눈을 반짝이며 “김000이 꼭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당부하시기도.
이런 날 보고 싶은 이가 따로 있지만
눈 덮인 봉우리에서 구름이 피어오르듯 하는 날이기에
더욱이 봐야할 것 같은데
‘일’ 없이 사람을 만난 것도 두 달 만에 처음인 데다
아껴주시는 선생님이시니...
해서 댁까지 갔다.
간밤에 공부하다가 밤샜다며 펴놓은 채로 둔 논문들을 보여주신다.
Topology, Epigenetics, Cancer에 관한 것들(그분 전공은 교회사).
공이 몇 개 붙어야 거래가가 될는지
그런 보물들도 보여주셨다.
송자, 백자, (신라)다기, 막사발을 포함하여.
비뚤음 하니 도토리 올려놓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백자 달항아리를 만져보다가
응, 왜 습막이 번지지? 낭패스럽네.
모딜리아니를 누가 알았겠나, 그 때문은 아니겠고
활동사진을 통해서 훔쳐본 서양 여자들이 예뻐 보여서이었겠는데
갸름하고 가늘어야 미인이라고 하게 되었지.
언제부터인가 새삼스레 ‘달덩이 같은 얼굴’이라던 말이 떠오르고
옛어른들이 미인이라 여겼던 모습이 그랬겠다 싶고...
조선 여인 마음씨도 그랬을까
물동이일 때나 젖먹이에게 물릴 때 내놓던 젖통처럼
꾸밈없이 퉁퉁하기만 해서 더 예뻤을까.
“이 하루방 좀 봐라
보통 아래는 조선놈 몸인데 목 위로는 몽고 대가리 올려놓지?
이건 안 그래, 안면의 각도가...”
“이 옥이 70 kg 인데, 여의봉 접고 엎드린 손오공의 시선이 어디로 가 있니, 백팔번뇌지?
깐 놈 뛰어봤자 손바닥 안이더라 이건데...”
“북의 김정일, 남의 이건희, 참 대단한 머리야.
그들은 참모들의 지혜를 모으는 게 아니고 혼자서...
네가 그걸 깨야 하는데...”
(응, 어떻게? 술도 안 자시고 그런 말씀을...)
신바람 강연의 감동 효과가 시들해질 때쯤 되어
우리는 나왔다.
대보름이어서가 아니고
(난 명절 모르며 살았어.)
그냥 헤어지기가 좀 서운했던 게지.
황희 정승이 물새들과 노닐던 반구정이라는 데 옆의 식당에서
석식 들며 달을 보는데
캬아~ 하지 않는 이들과 앉아서 그런지
별로이다.
대보름이라는데 달이 작다.
그림 속의 달이 더 낫겠다.
(그런 거지, 꿈속에 그려라 내 사랑 베아트리체
만나면 속만 썩이던 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지 않았으니
돌아올 것도 아니지만
잘 데는 찾아야하니까...
전화.
“빨리 오시래요. 다리에 마비 증세가... 찾고 계시거든요.”
(그 참, 첫 외출인데...)
구급차 속도로 달려 와서
응급처치?
기도, 발가락 주무르기, 수면제 투여.
나중이 좀 김샜지만
좋은 하루였다.
잠들기 전에 작은 위로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