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가기
(간밤 좀 걸었기로
고단하네...)
그가 나를 불러냈다.
위로자이겠나, ‘철학의 위안’ 같은 거지.
참 많이 떠들었지만
수학자와 앉았다고 해서 카오스 이론 같은 얘길 듣는 건 아니고,
뭐, 그 John Nash인가가 결코 ‘beautiful mind’는 아니었는데
일단 ‘천재’로 등록되면 결점, 허물, 추문은 덮어주거나 아름답게 봐주더라는 그런 귀띔은 있었다.
(난 천재가 아니니까 욕바가지를 금싸라기로 여기며 살았지.)
청진동, 중학동, 안국동, 관훈동, 인사동을 지나갔다.
비틀거린 적 없지?
조금 흔들리기만 했다.
그야 지구가 도는데
타고 가는 사람에게 흔들림이 없겠는가.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삶/ 살림/ 사람/ 사랑이 어디 있으랴.
하모.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거럼 거럼, 길탆고.
바보들은 Tillich의 ‘The Shaking of the Foundations’를
‘흔들리는 터전’이라고 옮겼다.
터전을 흔들기.
하긴 흔들기 전에도 흔들림은 있으니까,
흔들지 않아도 흔들림은 오니까.
그냥 숨쉼으로 보기에는 들먹임이 조금 커졌다면
흔들림이 있었기에 들썩이게 된 거구나.
속삭임, 노래, 흐느낌은 다 그렇게 시작하더라.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이해인, ‘황홀한 고백’-
(오버하진 마, 수도자가 쓴 거니까.)
손바닥 한 움큼 떨어진 별빛은
건너뛰지 못하고 수백 광년을 걸어왔는데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광속으로 말야.
자네 돌아갈 수 없다고 그랬던가?
그래, 역행할 수는 없지, 광선의 진행에는 후진 기어가 없으니까.
거 봐, 먹물들은 뭘 모른다니까
어떻게 뒤로 가겠니, 뒤로 돌아 앞으로 가는 거지.
그래 그럼 우리 돌아가자.
깊은 산골 실개천까지 몸부림치며 올라가
죽자, 알 까고.
얼마나 부화할지 살아남을 놈이 몇이나 될지
그거야 우리가 어쩌겠나.
골목을 몇 번이나 잘못 짚어 되돌아 나오다가
‘볼가’를 찾아냈다.
별 거 아니지만
칼라스 초상 한번 보고 나오면 됐는데
‘Ah! non credea mirati’를 들려주더라.
우리 이만큼 산 것도 백일홍쯤 된 거니까
화무십일홍이니 “믿을 수 없도다...” 할 것 없고
감사하자.
그런데... ‘Ah! non giunge uman pensiro’는 왜 따라 나오지 않지?
그야, happy-ending은 맥빠지잖아?
그냥 나가자.
시간, 돈
조금 쫓기는 듯, 아주 빠듯한 듯
그래도 잘 견디고 누추하지 않은
그런 걸음으로 건들거리며 나아가기.
친구 많은 애를 좋아하는 바람에
내 몫이 형편없이 작음을 억울해하면서도
질투한다고 야단맞을까봐 표정관리에 신경 쓰면서
먼발치서 한숨쉬며 바라보기.
종삼역 오호선은 왜 그리 깊이 박혔냐?
오늘은 새들이 짝짓기 시작하는 날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