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건 간 거고
살며시 이불 걷고 들어와 옆에 누웠어도
속살 간질이며 밤새 머물렀어도
그냥 좋다고만 그랬지 눈뜨지 않았는데
아침 되어 빈자리 쓸어보며 후회하지만
어디 가서 찾아올 수도 없고...
그렇겠지 계절의 오고감이
사건의 시종이
째지게 좋으면서도 기별 않고 왔다고
짐짓 눈 흘기며 맞았는데
그렇게 또 일러주지 않고 떠난 뒤에야
오고가고 미리 알릴 것 없다는 느낌표
있을 때도 기척이 없었기에
거기 그냥 있는 줄 알았다는
자 이런 황당한 변명 뒤에
가슴 펑펑 치는 뉘우침도 있다고
좀 진정되었으면...
겨울은 갔다고 그러자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그건 좀 이르겠지?
커튼 열어젖히기에 몇 분 남았다고 담배 한 대 태우고 있겠니
밀어올리기 전이지만 정신없을 거라
움돋고 꽃피운다는 게 용쓰지 않고선 될 일이 아니거든
좀 있으면 민들레 지천으로 널리겠네
잔디밭 훼손한 무단침입 죄를 물어 처벌하고자 하면
박멸할 수 없는 저항에 시작하기도 전에 작업포기를 선언하겠지만
민들레김치를 만들자면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걸
대단한 거라면 그렇게 넘쳐나지 못할 텐데
인정해주겠다면 자취를 감추더라고
저~ 교훈 한 마디
(듣기 싫지? 미안해요)
간혹 부러 찾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 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을 펼치고
바람 타고 나는 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 새 꽃씨로 변해 날으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 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과
민들레 꽃 필 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 떠올린다
- 최두석, ‘느티나무와 민들레’ -
내 나이에 “큰일을 하실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리 듣고는
으음 비장한 각오로 엄숙한 표정 짓다가
에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다시 쪼그라들었다만
그래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예냐고?
머물고 떠남 기다려줌 비움과 들어섬
작은 것이 살아남도록 마음 졸이며 품어주고
큰 것에게 방해될까 일 마치면 떠나고
더러는 더불어 삶이 맞물려 돌아가는데
지난 얘기네만 떼씀이 부끄러워진다
난 여기 있어 이만큼 자랐고
넌 쫓겨 다니듯 하면서 많이도 퍼트린다
더 오래 살 것 같으니
네 아들 손자 다 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