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착함


낙조가 기막히다는 곳


가본 적은 없지만 듣기는 했으니까

그런 데가 있는가보다 하는 거지.

때 되면 들리기도 하겠지만

거기서 살기야 하겠는가.

사진발 잘 받는다고 소문나서

그 넓은 갈대밭 안 밟힌 구석이 없을 만큼 몰려갔다지만

내게는 아직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꿈꾸던 트로이라고.

(난 발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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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김자윤, edunanum.com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

       (... ...)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 나희덕, ‘와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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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몰려올 건 뻔한 노릇이지만

“순간이여 멈추어라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칠 만큼 급박하지는 않고

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지만 정물화로 한 컷 뽑으면 영겁이니까.

(그러면 생명은 없는 거지.)


눈, 꽃비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

피고 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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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해제일에 들려주는 노스님의 화두처럼

무게 잡을 것도 아니고

아무 때나 실 뽑는 거미처럼 누에처럼

시나브로 새나오는 한숨에

담긴 절망 같지 않은 푸념

내일 해뜰 줄 아니까 저문다고 슬퍼할 이유도 없지만

“오늘 따라 더 곱네”라고 중얼거리는 건강함

-그래서 종교라는 추상은 삶을 다 담을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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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결은 고와야 할 거라


그저 그만한 실력들인데

(꼭 겨루어 내공을 가름하는 게 아니고 척 보면 가늠할 수 있잖아?)

수상경력 만큼은 발군인 사람이 있다면

“처신을 잘 해서...” (좋게 말해서 그렇지...) 라고 그럴까?

작품의 빼어남에 따뜻함을 가산점으로 인정받아서일 거야.


문태준도 그렇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다 이유가 있더라.

(‘맨발’이나 ‘가재미’의 비린내만 아니고

좋은 냄새 내더라.)


      어릴 적 돌나물을 무쳐먹던 늦은 저녁밥때에는

      앞마당 가득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

      목련화 하늘궁전에 가 이레쯤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 문태준, ‘하늘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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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 나희덕, ‘방을 얻다’ -


떠난 자리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니까

빈방이라고 몸을 들이밀지 못하고

그래도 마음은 두고 왔다는,

아하, 고게 동네 예쁜 계집애 같아서

결대로 쓰다듬어 주고 싶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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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친절합니다”라는 말씀을 표어처럼 반복해서

친절 이전에 격분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아내는 -뿐이겠는가- 좀더 친절해주기를 바란다.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너무 명료해서 눈부시면 보이는 게 없게 되지”

그러지 말라는 주문.

맑은 물이라 고기가 꾀지 않는 게 아니고

따뜻하지 않아서 살 수가 없다는 핀잔.

‘사람’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이 블로그 두고 하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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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늘은 있어야


소식 없는지 한참 되어

그래서 진열장에서 창고로 옮겨야 할는지 생각할 때쯤

새소리처럼 다가오는 음성이 곱다.

고운 만큼 착하기도 하겠지.


쉬어 쉰내 나고 무딘 쇳소리지만

한참 뽑을 수 있어

득음이라는 얘긴 아니지만

그냥 맑기만 해서는

소리꾼으로 쳐주지 않더라.


그늘은 택하거나 만드는 게 아니고

피하지 못해서 받은 것.

응달에서 오래 살든지

단 한번이지만 치명상을 입었던지

깐 데 또 까듯 엎친 데 덮치면

그리 안 되겠나.


많이 아파야 예뻐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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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뿐만 아니고

아지랑이 뒤로 보이는 흐릿한 회청색 하늘이나

비취색 쯤 되던 물이

바람 좀 분다고 흑갈색 거품으로 달려드는 것도

봐줄 만하더라니까.


바닷물이라고 염도가 다 같지 않듯이

눈물 속에 담긴 진실의 함량도 다를 것이야.

너 무슨 큰 울음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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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아프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괴롭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봐야 하니 괴롭지,

하면 사랑을 짓지 않으면 되겠니?


是以莫造愛 愛憎惡所由 已除結縛者 無愛無所憎

(법구경에서)


얽매임은 싫다만

사랑과 미움에서 벗어났다고 더 좋을 건 무엇?


愛樂生憂 愛樂生畏 無所愛樂 何憂何畏


사랑하고 좋아함에 근심 생기고 두려움 따르니

사랑도 말고 좋아함도 없으면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다는데


“지당하신 말씀” 하고서

사랑하던 걸.

그래서 아파하더라.

두려워하더라.

미워하더라.

그리고

“좋았더라” 하던데.

아름답다고 그러던데.


아픔이 좋은 건 아니고

아름다움이 절대가치는 아니겠지만

아픔을 통과해야 아름다움을 이루더라.


(좀 비약이다마는)

사랑은 아름다워라.

(아픔은 건너뛰지 못하지만

뒤따르기도 하지만

사랑보다 오래 가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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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착한 건 아니고

아름다워야 착한 것도 아닌데,

착한 건 보통 아름답더라.


착해야 아름다울 것도 아니다.

소싯적엔 착하지 않은 건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했지.

은인이고 후원자인 남편을 버린 마리아 칼라스를 미워하니까

그녀의 노래는 괴성이었다.

전남편을 흉보는 천경자는 어쩜 그리 징그럽던지.

아름다워라

꽃뱀처럼 양란처럼.


진선미를 금, 은, 동 메달로 여기는 나라에서

미는 괜찮으면서도 떳떳하지 못하고

빼어나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거였다.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다지.)

다 한 꼭지점을 차지하고 있거든.

‘성(聖)’과 동거리점이라고 할는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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