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없어도 말은 하고 싶어서
가친 생신인데
36년 전쯤일까 외할머니와 둘이 사는 동안
밥때마다 다퉜다.
내게 따로 상 차려주시고는
돌아앉아 간장 한 종지 신 김치 두어 쪽으로 드셨으니까.
(알겠지, 개길 수밖에 없던 내 맘?)
95 세 되신 해였지 태평양을 건너시고
캐나다, 미국 외손자/손녀 집을 옮겨 다니시며
조용하고 깨끗하게 몇 해 더 사셨다.
(한 세기를 넘겨... )
오늘 아버님 생신
둘이 맞는 아침상, 점심, 저녁
좀 그렇다.
앉아 있기 힘드시니 오지 말라고 그러긴 했지만
정말 아무도 안 오네...
근친(覲親) 다녀가는 딸 등 뒤에 대고
“어여 가”하며 홰홰 손을 내젓다가
막상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가면
“아니, 저런 독한 년...” 하는 기분.
(가라고 한다고, 돌아보지 않았다고... 그런 게 아니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
(고후 4: 16)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씀.
아픔이 오래 되었으니 버틸 힘도 줄어들었겠으나
너무 힘들어하시니 뵙기도 민망하다.
사람이 독처(獨處)하는 것이
“아담(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창 2: 18)
‘돕는 배필’은 역할 분담이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이라서 만든 게 아니고
혼자 있는 게 안 되어서 주어졌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을 받기 전.)
‘사람사이(人間)’라야 사람답다.
사람은 '더불어 있음(Mitsein, together-being)'이다.
쓸쓸함, 그리고 심심함
그게 해결되지 않고서는 행복이 오지 않는다.
어른은 아들 있어도 외롭고
나는 할 일 있어도 심심하고.
같이 있다고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서 아주 끝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너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서 이루는 약속
머나먼 내일
그리고 이별과 망각
- 나태주, ‘사랑은 혼자서’ -
망각?
아주 잊혀지는 건 아니지만
중요하지 않게 되는 거지.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정말 ‘당신’이었다면 다른 얘기겠지만)
왜 그와 내가 나란히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는 척.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면 아주 낯익은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그 언젠가는 나였던 이가 빛바랜 사진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애써 떠올리지 않으면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만남이 끊겨진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왜 그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 김민수, ‘여기, 아빠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있다’ -
내가 외롭다는 건 말이지
자꾸 외롭다고 그러니까
(그랬어?)
(옛) 동네사람들은 “응 왜 그러지? 큰일 났네” 그런다는데,
그 얘기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
“응 왜 그러지? 정말 큰일 났네.”
(무슨 소린지 통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낫지
뭘 좀 안다는 듯이 일없이 염려해주는 사람은...
아휴~ 신경 좀 껐으면.)
내가 이렇게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마주 보고 싶은 자리에
네가 없다 할 게 아니고
어디 있든지
같은 델 본다고 여기며.
이봐, 내가 외롭다는 건 말야
이런 거라고.
노래 한 곡 부르고 나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 ‘고향’ -
그러니까
고향에 돌아와서 고향상실을 비로소 확인하고
맴이 쪼깨 껄쩍하다는 얘길 가지구설랑...
영광 앞바다에서 잡히지 않아도
영광에서 잠간 바람만 쏘이면
순, 참, 진짜, 영광굴비일 텐데
왜 여기 사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아니냔 말이지.
백일홍 맨드라미처럼
알 만한 이들 아닌데도 낯설지 않은 게
고향 사람들인데
옛사람들 다 먼저 갔는지
아는 이 하나도 없어
산자락에 홀로 눕는다는 얘기야.
가면 또 어디로 가겠니?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그만 할까
누구한테 물어봐서 아는 건 아니고
(다들) 그럴 거라는 얘긴데,
이 짓(blogging)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내 정신 좀 봐,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칭찬을 듣나...”
On & off 간에 재수 없는 얽힘으로
속 터질 일이 간헐적으로 치솟고.
해서 냉수 먹고 속 차리자며 문 닫겠다고 그러고
무슨 유서 아님 절명시 같은 것 하나 남기고 떠났다가
금단현상으로 빌빌거리기를 몇 날 몇 주,
귀거래사도 없이 돌아오더라.
즐겨 듣는 이 없어도
저 부르고 싶어 흥얼거리면 그만이고
교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지 않았다.
동네사람 다 먹을 밥 지을 것도 아니고,
해가 뉘엿뉘엿 그림자 길어질 제
가르마 같은 논길 걸어 돌아오는 제 낭군 보고,
아님 저라고 이슬 핥고 사는 게 아니니까
냄비밥이라도 짓는 것이다.
꼬박꼬박.
허름한 집 굴뚝에서 때마다 연기 피어오르기에
“저 집에선 누가 뭘 먹고 살지?” 호기심으로
힐끗 봉창으로 들여다보고는
“난 또...” 하고 지나가는 거지 뭐.
그런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