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는 길
최집사 댁에 들려서 차 한 잔 마시고 나니까
그라쿠스 형제 같이 잘난 두 아들이 불려와 무릎 꿇고 앉았다.
- 애들 이름은?
- 큰애는 고다이고 작은애는 고야입니다.
(응, 뭔 이름이?)
- 성을 붙여서 축복해주십시오.
그날 기도빨이 쎄지 않았을 것이야.
최고, 일번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제 차례 기다리는 줄에 끼어있는 게 싫어서
(몸싸움도 해야 되거든)
명품 지녀본 적 없고
개봉관 비켜서고
제철에 여행가지 않고 그랬다.
‘노욕’이라는 죄목에 걸려들 나이도 아닌데
누려보지 못했던 운이 커 보이기 시작했고
출발점이 달랐기에 앞서가는 게 어렵지 않았던 이들이 미워졌다.
지금부터라도... 하다가
에이 땀나고 숨찰 텐데... 로 끝내버렸다.
따라잡을 것도 없고
정상에 가야할 것도 아니고.
올라가는 길은 또한 내려가는 길이기도 하고
올라간 사람은 또한 내려가야 할 것이다.
미리 내려가지 뭐.
등산의 영광은 없어도
하산의 사명은 받았으니까.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상구보리(上求菩提)는 하지 않고...”로 욕먹을 게 뻔하지만
쫓겨나면 그게 그 길이니까.
수덕사 뒤로
지장암 가는 (사진: 허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