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짐 2
펜, 그리고 좀 사는 집 애들이 파카 만년필을 사용하던 시절 얘긴데
잉크를 듬뿍 찍었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방울을 떨어트려 노트를 버리기도 하고
빨리 마르지를 않아 묻어나기도 해서
어떡한담? 압지라는 게 있었지.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나서 클리넥스 살짝 물어 찍어내듯이
한 줄 쓰고 나면 압지로 가볍게 눌러주었다.
번짐을 막자고 그런 거였는데...
번짐 그거 있어야 되겠어.
(조류독감?
나쁜 영향력의 신속한 전염성이라니...
일단 그건 퍼짐이라고 해두자.)
번짐은 내 가진 것 조금씩 놓아줘서
네게다 조금씩 스며들게 하고
그래서 나는 빈혈이 되고
그러면 너는 기운 차리고
그렇게 네가 산다면
살아서 할 일 한 것 같아 기쁘고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어라.
흘린 것을 되돌려 받겠다고 한 적 없는데
머금었다가 익은 걸로 베푸는구나.
역삼투압으로 스며드는 흐름이 황홀하네.
적시지 않아도 늘 젖어
그렁그렁 똑똑... 하지 않아도
우린 알지 번짐 전에
흐름과 스밈이 있었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