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1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둠벙 망신은 미꾸라지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다 아는 얘기, 하는 말인데,
그게 볼품없다고 쓸모없는 것도 아닐 텐데
외모지상주의라고 하던가 그런 단일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폄하할 수 있는지?
뒷모습이 삼삼해서 추월하여 돌아서는 순간
으악~ 했다는 그런 얘기 예전에 돌아다녔다만,
뒷모습 괜찮은 게 어딘데,
그리고 얼굴쯤은 뜯어 고칠 수가 있으니까.
(총공사비가 얼마나 먹히냐는 건 별문제지만.)
모과 보고 놀라자면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대.
우선, 아휴 어쩜 그리도...
다음에, 으응, 꼴은 그렇다만 향기는 아주 그만이네?
다음에, 향이 그 정도라면 맛은 어떨꼬 했다가 웩웩.
그렇다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게 아니고, 모과차, 한약재, 그런 걸로는 괜찮다고 그러지.
[나 보고도 첫눈에 판단하지 마세요,
(몰골은 흉악해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니까.]
2
옛적에 함경도 사람들이 대나무가 어떻다는 얘기를 듣고는
“세상에 어디 그런 나무가 있겠냐?”고 전하는 전라도 사람을 뭇매 때렸다는 얘기가 있었지?
해외동포들은 희미한 기억과 고집이 겹쳐서일까 일없이 입씨름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하자면 “모과나무와 명자나무가 그게 그놈이냐”는 따위 문제로.
아냐.
미국에서 보는 건 명자나무라고.
예전에 노인들은 여자들이 그 꽃을 보면 바람난다고 집안에 심지 못하게 했다는데,
미국에서는 더러 생울타리처럼 줄지어 심어 놓은 곳도 있다.
모과나무와 꽃, 나무, 열매 비슷한 부분도 있다만,
닮았다고 다 “기여.” 그럴 거라면 동네 노인들이 다 제 할아버지이게?
3
오래 된 단지이고 보니 나무들이 나이만큼 키도 크다.
이층 아파트, 창 앞에는 목련, 단풍, 모과, 감나무가 자리다툼하며 어깨를 넓힌다.
노환으로 보호감찰 대상이 되신 가친을 돌보느라 여러 차례 태평양을 건너게 되었는데,
지난 해 삼월이던가 목련꽃들이 들여다보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신혼부부 첫날밤을 들여다보는 동네 사람들 마냥
저급한 호기심으로 쑥덕거리던 꼴이라니, 목련의 의젓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지.
(응, 내가 즐겼다는 얘기. 천사들의 관음증보다 나의 노출증이 더 구제불능.)
그리고 동짓달인가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감 몇 개와 더불어
손닿을 거리에 모과 다섯 개가 달려
창문을 여니 달콤 향긋한 냄새가 집안으로 스며든다.
아랫집에 모과 두 개만 팔라고 말해보라고 그랬다.
이미 한 접은 땄을 테니, 그렇게 말하면 그냥 따가라고 그럴 줄 알았다.
점유권 시위인가 장독 두어 개 앞뜰에 내어놓긴 했다만, 그게 그 집 땅인지
거기 심은 나무가 그 집 것인지, 그래서 과실도 독식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다섯 개가 다 사라졌다.
4
씁쓸, 떨떠름한 기억을 앙심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더욱이 나무야 아낌없이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해서 아침마다 내려다보며 인사한다.
저녁에 돌아올 때는 치켜보며 인사하고.
가만 있자, 몰랐던 것도 아닌데
맞아, 네 피부가 그랬지.
공수부대 위장복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렇구나, 우리 코스모 뱃살이 그래.
집 안에서 키우는 게 싫어서 나 하고는 피차 “별로...”인 시쭈.
그래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발랑 자빠져 네 다리 들었다.
‘항복!’ 했으니, 배 좀 살살 문질러달라는 표시.
‘남’의 뜰에 무단 침입할 수는 없지만
너를 보듬어주고 싶다.
따로따로야 곱겠는가
그래도 인상파 점묘 같은 상처들을 쓰다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