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즐기자고 찾아가는 데이고 그래서 유원지(遊園地, amusement park)라고 부른다.

김평범, 이단순 부부뿐만 아니고 안보통 선생도 간다.

혼자 들려 외로움 타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싸리꽃 사태 날 때 꿀벌의 잉잉거림 같은 분위기에 감염되어

구긴 인상도 펴질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포즈를 취한다고 눈여겨보지도 않을 것이고.

 

 

A1[3].jpg

 


그때 우리 어렸을 적엔

니야까로 운반하는 회전목마를 타면서 좋다고 그랬다.

좀 어지럽고 내리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웃는 엄마 보며 참았다.

돈 내고 타는 건데 싫다고 그럴 수 있나?

 

 

A2[2].jpg

 

                                                               A3[1].jpg

                                                                        (흔들거림에 내어맡기고 기대거나 안기어 꿈꾸고 싶다.)


 

이젠 어린애들도 그런 고전적인 카루셀은 쳐다보지 않는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쌍팔(88)로 몇 번씩 돌려야

괜찮은 롤러코스터로 인정받아 사람들을 부를 수 있다.


강심장군이라도 싫으면 안 탈 것이고

임신중양이라도 속이고 탈 것이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것이지

타지 않을 것이면 뭐 하러 이런 데 왔냐고 그럴 것 없다.

그것 하지 않았다고 본전 생각날 것 없고

남 노는 것 구경하는 것도 놀이이니까.

 

 

A4.jpg

 

                                           A8.jpg

 

 

요즘이야 어디 그렇겠냐만

예전엔 산고가 너무 힘들어 다시는 애 낳지 않겠다고 그러다가도

동생 하나 아들 하나 하면서 여럿을 두었다.

... 그랬듯이

“내가 이 짓을 왜 해, 다시는...” 하다가도

해본 사람은 또 하더라고.


아휴 그 어지럼증

아주 이탈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되어있긴 하지만

일탈(逸脫)의 충동을 원심력에 내어맡기는 그 진한 떨림은

힘들어도 다시 누리고 싶더라나.

 

 

A5.jpg

 


아까 그랬지

하기 싫어 안 한다고 누가 뭐랄 것 아니라고.

말하자면 선택사양이겠네.

 

삶이라면 말이지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일 수가 없고

삶으로의 강제라는 채찍에 몰려가는 것인데

구토 증세가 있으니 멈춰달라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유격훈련처럼

해야 할 것이면 하고 지나가야 한다.

(“아주 즐거웠어요.” 할 사람도 없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말이야 뭐...--

다시 할 것도 아니다.)

 

 

A6.jpg

 

 

그게 뭐 훈련은 아니지.

그걸로 끝나는 거지 써먹게 되지 않으니까.


그것도 저것도

탔던 데에서 내리게 된다.

 

 

A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