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이 말하기를
좋아서도 아니지만 시 한 편 옮겨본다.
치열하게 뛰어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거리를 두고 관조하지도 않으면
예쁜 작품이 나올 수 없지.
혁명이나 전쟁이라는 격동기에는
자유인이나 휴머니스트라 하더라도 제멋대로 살 수는 없는 거니까
(유리 지바고처럼 말이지)
차라리 서정시를 쓰면서 모른 척 했던 사람들 눈감아주고
(그들이라고 고통 없이 지낸 세월은 아니었으니까)
파샤 스트렐니코프가 역사 재정리 작업에서 복권될는지
그건 우리 알 바 아니고...
1968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
조중동이라면 지금은 수구꼴통 기득권층의 대변지로 치지만
삼선개헌, 유신을 준비하던 시절에
이런 시를 쓰는 사람과 싣는 신문도 괜찮았거든.
학생 때 길거리에서 소리 좀 질렀기로서니
공로를 인정받아 요직을 차지한 민주인사들의
코흘리개 시절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니까.
이제 와서 총구 앞에서 부를 노래를
방아쇠에 손가락 건 사람들이 부르는 게 참 이상하다.
생소리 그만 내길 바라며...
수운이 말하기를,
슬기로운 가슴은 노래하리라.
맨발로 삼천리 누비며
감꽃 피는 마을
원추리 피는 산 길
맨주먹 맨발로
밀알을 심으리라.
수운이 말하기를
하눌님은 콩밭과 가난
땀흘리는 사색 속에 자라리라.
바다에서 조개 따는 소녀
비 개인 오후 미도파 앞 지나는
쓰레기 줍는 소년
아프리카 매 맞으며
노동하는 검둥이 아이,
오늘의 논밭 속에 심궈진
그대들의 눈동자여, 높고 높은
하눌님이어라.
수운이 말하기를
강아지를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개에 의해
은행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은행에 의해
미움을 하눌님으로 섬기는 자는
미움에 의해 멸망하리니,
총 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그, 사랑에 의해 구원받으리라.
수운이 말하기를
한반도에 와 있는 쇠붙이는
한반도의 쇠붙이가 아니어라
한반도에 와 있는 미움은
한반도의미움이 아니어라
한반도에 와 있는 가시줄은
한반도의 가시줄이 아니어라.
수운이 말하기를,
한반도에서는
세계의 밀알이 썩었느니라.
- 신동엽, '수운이 말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