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보고 간다
나 오늘 떠나
검문소에서 여행목적을 물으면 뭐라고 그러지
비 만난지 오랜 땅에서 힘겹게 버티는 꽃들을 안락사 시키려고요
(못 알아들을 말이라며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다)
사랑 구할까 해서
(동네엔 처녀 없냐고 야유할 것이다)
문 나서려는데 안개가 달려든다
내저으니 더욱 휘감긴다
해뜨고 한참 됐으니 엷어져야 하는데
워낙 지천으로 쏟아내니까 시계 제로
헤매다가 후회할지도 모른다
더 기다릴 걸
떠나지 말 걸
널 잊지 못하리
날 잊지 말아라 할 것 없다
빛을 다 모으면 색이 없어진다는데
물감은 덧칠하면 검정이 되던 걸
자꾸 개칠하면 원형보존이 안 되니까
000아줌마처럼 성형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아직도 흐름은 있고
물빛 그대로이지만
그 때 그 물 달라고 그럴 순 없지
그렇게 지나간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