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참, 내 참


‘참’은 잊었던 일이 문득 생각날 때 쓰는 말이다.

  (예) “참, 너 그때 무슨 옷 입었더랬지?  살색?”

그것은 또 딱하다는 심정을 나타날 때 사용한다.

  (예) “내 원 참 기가 막혀서...”

또?  말로 다할 수 없을 때, 그 왜 능라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 없어서 “. . .” 했던 것처럼.

또?  어쩌면...  정말 이럴 수가...  우와... 


딴 맥락이지만,

참은 眞, 純, 全, 一, 統, 通...

영어로는 charm, 멋져, 매혹(魅惑), 황홀(恍惚).

황홀?  ek-stasis, 그러니까 내가 내 밖에 있다는 말이구나.


참, 참, 내 참, 그것 참, 하이 참, 참 아름다워라.

곤란하고 어쩔 줄 몰라 나오는 말이 아니고

“어쩜 이렇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그런 뜻.

(애인이 잘해줘서가 아니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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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눈을 만났거든.  그것도 경상도에서.

강풍과 혹한으로 짝 맞춘 눈보라가 무에 그리 좋겠는가.

(물론 그때라도 장작불 괄게 타는 난로 곁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나쁠 것도 없겠지만.)

오늘 갑자기 눈이 쏟아졌지만, 바람도 없고 춥지도 않아서 다닐 만 했고,

넉넉한 마음으로 설경을 즐길 수 있었다. 


언양에서 청도로 가지산, 운문산을 넘어가는 길,

고갯길 넘기가 쉽지 않은 차들은 갓길에 비켜 도로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마침 사륜 구동차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럼 저희라도...” 하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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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소복이 쌓일 만큼 눈 내린 후에 볕 나기 시작했지만

아직 대기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공기를 저으며 파문(波紋)을 키우는 소리가 있었다.

200여명 규모의 동성 삼부 합창, 비구니들의 독송이었다.

(옆에서 감동 먹은 사람이 꿈꾸는 소리로 한마디 했다.

“저런 랩이라면 들을 만 하네요.”)

참...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도 있는 거구나.

급한 여울, 완만한 흐름, 대숲 빠지는 바람, humming bird 날개 젓는 소리,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고드름 떨어져 깨지는 소리, 은쟁반에 옥이 구르는 소리,

소리 없는 아우성, 똑똑 또그르르...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났다. 

부처님이 그냥 빙그레 하시겠나, 저런 노래 들으시니 좋기도 하시겠지.

(불자는 아니지만) 들려주고 싶은 사람 있어 전화 걸었으나 받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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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이 끝나고 “일대, 이대, 삼대, 사대 돌아갑시다”로 몰려나오는데,

에구 어쩌지, 나쁜 짓 하다가 들킨 것 같아 눈 내리깔았는데도 귓바퀴가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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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서

기웃거리며 어슬렁거리다가

음, 2.8 km?  딱 적당한 거리네, 사리암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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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경사가 끝나면서 층계로 올라가게 되는데,

어라, 꽤 높네.  가파르기도 해라.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절에서 찬송가 부르기는 그렇지만, 그 ‘Titanic’인가에도 나온 노래니까...)

내 눈이 노래지고 가쁜 숨 몰아쉬는 것을 보고 안됐는지 내려오는 사람이 뭐라 한다.

“고마 쪼매만 더 가이소.”

몇 걸음 더 가다가 만난 사람이 그런다.

“이제 다 왔심더.”

그리고서도 한참 더 올라갔다.

얼마를 ‘쪼매’라 하는지 “어휴 이...”

(내려오면서 세어보니 940 계단이었음.  108 개쯤으로 끝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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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드디어... 

애개, 저걸 보러?

안도와 실망이 함께 다가오면서 만나게 되는 첫 방이 ‘자인실(慈忍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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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내가 지금 좀 화가 난 건가?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야 하고

사랑으로 참을 수 있는데도?

뭘?  아픔을.

“아아 무정한 이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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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에 여럿을 만났지만

난 “쪼매만 가면”이라고 격려하지 않았다.

저들은 나반존자(那畔尊者)의 기도도량을 찾아가는 이들이니까.


돌아오는 길.

눈꽃은 벌써 기운을 잃었다.

삼월 눈이 그렇지 뭐.

고개 넘어 울산에 들어오니 눈 온 것 같지도 않게 시치미 뗀다.


격정은 그렇게 쏟아졌는데 어느덧 사라져버린 눈.

(‘눈 녹듯’이라고 그러지.)

사랑은 손톱 밑에 박힌 빠지지 않는 가시.


기사로 수고하신 김 박사는 부인 황 여사와 예쁜 딸 연정이를 싣고 다시 양산으로 갔다.

별난 데에서 날 대접하겠다고. 

‘황토마루’라는 델 가서 자리 날 때까지 한 시간 반쯤 기다려 3시 반쯤 점심을 들게 되었다.

몸에 밴 고기 냄새 팍팍 풍기며 서울 행 비행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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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었다.

참 아름답고, 눈부시고, 고단하고, 고마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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