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가도
오늘은 또 무슨 얘기냐 하면
오기도 전에 갈 걸 슬퍼할 것 없다는...
기다렸다고 오는 건 아니고
올 줄 알고 기다린 건데
온 건 가고
그렇게 봄날은 가고
피었다가 지는데
가면 아주 가는 건지
갔기에 아주 사라진 건지
뭐라도 남겨둔 게 없는지
장미를 먹고사는 건 아니지만
한번 들고나면 그득한 게 한참 가거든.
끼마다 먹는 밥은 먹었기에 배고파지는데
장미는 한 끼 때우는 게 아니고 꽤 오래 견디게 하더라
시드니까 오래 가는 것이다
깨지지 않는 비닐 바가지는 잊혀지지만
샘터에 떨어졌다가 흘러간 꽃잎은
흉터 남기듯 새겨지더라고
시들더라도
무너지더라도
흩어지더라도
헤어지더라도
같이 살지 못하더라도
허무한 게 아니고
아주 사라진 게 아니고
어떤 형태로 머물고
무슨 영향력으로 남더라고
그러니까 내구성을 가치의 척도로 치자면
오래 있지 못하기에 더 오래 있는 것들이
상품 아니겠냐는 거지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간 다음에 가꾸자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