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뇨 네뇨, 상하좌우가 바뀌어 나오기도 하고
그 촌스러운 부호는 왜 붙여서 헷갈리게 하는지...
(에고, 주워 챙기는 게 다 그렇더라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혼자 있기는 어렵지만
혼자라서 좋은 날이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봄날이라면 혼자 견디기가 상대적으로 쉬울까?
아지랑이 속으로라면, 꽃구름 위로라면
혼자 걸어가도 되겠다.
그런데...
十五越溪女 시내 건너 열다섯 처녀아이는
羞人無語別 부끄럽다 말 않고 헤어지더니
歸來掩重門 돌아와서 문 걸고 흐느끼누나
泣向梨花月 배꽃에 달그림자 어른거림에
- 林白湖, ‘閨怨詩’ -
어떻게 해줄 수가 없네?
(소녀야 네가 뭘 알아?)
그 옛날 부부 사이에 정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도 않았는데
(하마 그랬으랴, “에헴~”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닌 듯’한 거지.)
살 붙인 시간 길지 않아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게고...
급히 알린다고 했더라도 뭍길 천리, 물길 천리라 한 달이 걸렸다지.
부인의 죽음을 전해들은 추사 김정희는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이란 시를 지었다.
那將月老訟冥司 어떻게 명왕께 상소하게 된다면
來世夫妻易地爲 다음 세상에선 우리 서로 바꿔 태어나
我死君生千里外 천리 밖에 나 죽고 당신이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 이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려오
고경명이 썼다고 전해지는 시는 또 이렇다.
보거든 슬믜거나 못 보거든 잇치거나
네 나지 말거나 내 너를 모로거나
찰하리 내 몬져 치여서 너 그리게 하리라
“나 지금 많이 슬퍼”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그 대신 내가 당하는 게 감사하지
“그대도 한번 겪어봐라” 할 것도 아니다.
그때 소내(牛川)나루에 남겨 놓고 떠날 적에
- 마음으로는 다 건넌 후에 손 한번 흔들고
마재(馬峴) 넘어가며 점 같은 데 향하여 “어여 들어가” 소리 지르자고 했지 -
상앗대로 밀 때는 슥슥 잘 나아가더니
강심에 이르니 노를 저어도 헤쳐 나가지 못하고
어어~ 하다가 흘러가고 말았다.
(팔당호에 수몰되기 전에 마재 쪽에서 바라본 소내 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