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선생님
‘내 생애 아름다운 82 페이지’ 展
'특별' 전시회라도 한 두 차례가 아니니
이름이야 뭐라 붙이든지, What's in a name?
82세라시니까.
건강도 좋지 않으시다 는데...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하실 테니까.
서울 사람들이야 자주 봤을 테니
“아휴, 또?”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33년 만에 돌아왔으니까...
단번에 폭식 폭음하고
숨고르기.
경복궁 돌담은 돌지 않는데
나는 좀 어지럽다.
'길례 언니'
죄송합니다
40년 전이겠네.
두 번 마주쳤다. (뵈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소공동 비좁은 보도에서.
나이 그만해서 저렇게 하고 다녀도 되는가 싶은 차림새로
껌을 씹으며 건들 걸음으로 다가오는 여인.
(신문 잡지에서 사진 봤으니 알아볼 수야 있었지.)
그리고 무교동 어느 다방(‘교차로’ 아니면 ‘행’이었겠구먼)에서.
말상 얼굴의 검은 입술에 물린 담배.
맘에 들지 않아서 째려보다가
잠간 공중에서 시선이 엉겨 붙었고
내공이 약한 내가 눈 내리깔았다.
“이제부터 미워할 거야” 다짐하고 나왔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그때 나는 결벽(潔癖)의 양수를 닦지 않은 신생아랄까 순정남이었거든.
순한 것이 곱고, 착해야 아름다운 줄 알았거든.
짙은 입술, 눈 화장, 매니큐어는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여겼고.
그림이 그게 뭐야, 웬 뱀? 귀신딱지 같고...
응, 고갱, 마티스를 따라가다 말았나?
그랬던 거지.
(짜샤, 니가 뭘 안다고?)
'사군도'
나이 드니까
(‘늙으니까’라고 그래야 하나...)
독한 것에 끌리더라.
뻔뻔하게 야한 것, 원색 분출이 좋더라.
오늘 선생님의 사진 뵈니까
젊어서 미인이셨잖아? 늙어서도 고우시네.
그림들 하나같이 아름답고-착하기도 해- 정감 넘친다.
섬뜩? 하나도 안 그런데.
강렬하지만 복잡함이 없는 걸.
사람들 없는 자리라면 엎드려 삼배했을 것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존숭(尊崇)합니다.
(왜 예전엔 징그럽다고 그랬을까?
그땐 제게 눈이 없었어요.
떴지만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였거든요.)
이런저런
연필, 펜, 사인펜 드로잉.
색깔뿐만 아니고 밑그림이 단단하니까...
색 바랜 종이들을 보다가 외할머니 반짇고리가 생각났다.
실패, 골무, 헝겊나부랭이 같은 것 말고도
참빗, 부채-살 빠진, 사진, 양면괘지, 노리개도 있었다.
그런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되도록 값나가는 것들이겠는데
그분의 추억 어린 소품들도 나왔다.
에이 뭐, 시시한 인형 같은 것들도 나왔네, 뭐땜시?
동전은 동그란가?
동전을 정원(正圓)으로 볼 수 있는 관측점은
직사각형으로 보게 되는 시선만큼이나 제한되어있다.
보통 지각하는 이미지(sense data)는 타원형인데도
사람들은 동전을 동그랗다고 그런다.
사람 얼굴을 늘 정면으로 대할 수는 없는 건데
왜 좌우대칭형-대충 그렇다 치고-의 앞얼굴만 그리게 될까?
옆얼굴들이 더러 나오기도 하는데
옆얼굴에 찍은 눈은 (대부분) 정면으로 본 형상이더라는...
(그 이집트 벽화처럼.)
(그야 뭐 가수들 중엔 고음을 예쁘게 내느라고 ‘이’를 ‘아’라고 그러기도 하니까.)
'미모사의 여인'
'윤사월'
작가의 고향, 작품의 산실을 찾아 나서기도.
(그분 자신이 문인이시기도 하니까.)
나도 헤밍웨이 냄새 맡으려고 Key West까지 찾아가기도 했지만
고양이만 득시글거리더라.
(아, 뭐 소방서 망루에서 잘 보일만한 자리에서 아줌마가 옷 벗기를 즐겼다는,
그런 식의 시시한 얘기 하나쯤 물고 오지.)
테네시 윌리엄스, 마가렛 미첼, 에밀리 브론테... 많이도 찾아다니셨구나.
' 헤밍웨이의 집'
폭풍의 언덕
그게, 하나도 사납지가 않아서 “무슨 폭풍의 언덕은?” 싶더라고.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 같은 그런 빠르게 확산하는 음산함은 없고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구름도 바삐 가고 풀들(heath?)은 눕혀졌지만
나무는 흔들림이 없네?
옳지,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아냐, 가만히 있는 건 없어, 산들도 움직이거든.
산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염소처럼 뛰며
언덕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양처럼 뛰느냐?
(시편 114: 6)
그때 그분에게 무슨 회심(回心) 같은 게 있었던 게야.
그래서 많이 기뻤던 게야.
법열(法悅)과 적정(寂靜)은 같이 오니까
회오리치는 기쁨조차 노란 평화가 붙들고 있구나.
미완성
미완성 작품이 여러 점 전시되었는데...
왜 ‘미완성’이라 그러는지?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가필(finishing touch)을 기다려서?
예쁜 글자 ‘鏡子’가 들어가지 않아서?
이 악장만 남겼기에 ‘미완성 교향곡’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좀 그렇다.
손을 더 대자면 언제라도 더 댈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지 그때까지로 완료된 것 아닌지?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고 미완성이 아니고
짧은 채로 종결되었으니까
그것도 완성이라고.
“테텔레스타이.”
(흠, 쟁이가 아니니까 책임지지 않고 떠들 수 있어 좋구나.
무식하면 용감하니까.)
‘황혼의 통곡’(1995)
꼭 오래 살 건 아니지만...
선생님 회복하여 일어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