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그 정도 추운 줄 모르고
달이 부르기에 나갔다가
매복에 걸려
적병이 에웠는데도
귓바퀴 에이고 살아 돌아왔으면
그만해도 감사해야지.
매임 없이 살던 사람이
늙마에 얽힘 생겨
답답해서 나갔는데
지체 한 쪽을 내어주고
생명은 지키기로
마음 굳혔다.
그런 사람이어라.
돌아가기엔 너무 먼 곳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하는 사람.
그리워하지만 한숨과 눈물은 내보이지 않는 사람.
구름이 사라졌으면 비 되어 내린 줄 아는 사람.
첫얼음 낀 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소리를 듣는 사람.
산불 진화한 자리에서 어떤 나무들이 들어설지 그려보는 사람.
사과 한 알에 씨가 몇 개 들었는지가 아니고
씨 한 톨에 사과 몇 개가 들어있는지를 헤아리는 사람.
사순절을 가리키는 라틴어 Lent는 ‘봄’이라는 뜻이다.
봄은 때 되었다고 그냥 오는 게 아니고
몇 번씩 취소할 위기를 넘기고서야 힘겹게 도달한다.
(해마다 오긴 왔지만 그렇게 왔다.)
겨울이 고분고분 물러나지는 않고
끝자락이라도 한번 펄럭이면
오던 봄 걸음 한참 멈추게 하더라고.
(“사월은 잔인한 달...” 들먹이지 않아도 알지?)
언 땅 녹을 때 일렁이면
울렁거리고
그러다가 토하면서
살아있음을 알린다는 게
큰 아픔이더라고.
사십일 동안 견디는 게 아니고
아픔을 짓고(作) 이루어(成)
“다 이루었다(Tetelestai)!”(完) 그러면
비로소 살게 되더라는 얘기.
(먹고 싶은 것 먹지 않는 것
보고 싶은 이 보지 않는 것
가고 싶은데 가지 않는 것
그런 건 아픔의 등급에 들어가지 않는 거야.)
열매 맺지 못한다고
베인바 되었는데
우듬지에서만 자람이 있지는 않는가봐.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서 11: 12)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이사야 6: 13)
많이 아프고
나는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