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와 에로스?
오래 전에 니그렌(Anders Nygren)이라는 이가 ‘Agape and Eros’라는 책을 냈다.
그 후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 이타적 사랑인 아가페와
인간의 조건적, 이기적, 자아 성취적 사랑인 에로스를 나누는 것이 상식처럼 되었다.
설교의 말미에는 “우리도 하나님을 본받아 아가페적 사랑을 해야 되겠습니다!”가 따라 붙고.
아휴~ (큰 한숨)
니그렌이 스웨덴 사람-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웨덴에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의 사고에 영향을 끼쳤을까?
밤도 희뿌연 여름과 거의 진종일 어두운 겨울, 그렇게 극명하게 대립되는 자연,
그런 이분법.
그 극성(極性)이라는 것은 남극(S)에 가까이 갈수록 북극(N)으로의 끌림이 힘을 잃지만
(“북극에 가까이...”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그런 반대쪽으로의 경향성이 전혀 없다면
아예 양극(兩極)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얘기.
어찌 그럴 수 있겠어?
음양, 명암, 좌우...
(일단 사회현상엔 적용하지 말자.
'여당'에서 소득계층의 ‘양극화’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는 게 황당하지만.)
일없이 길어지니 그만하고,
(“우리도... 본받아...” 같은 쓸데없는 말도 그만하고.)
(그렇게 분류하긴 싫지만 남들 쓰는 말을 사용하자면)
조금은 아가페 같고 얼만지 잘 모르지만 상당히 에로스 같은...
그렇지 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한용운,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선사님.
다 그러지 않나?
(혼자 그러신 것 아니라는.)
나도 그렇게.
에휴, 에휴, 아휴~ (아닌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