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찾아 2
그날 김시습의 詩題를 빌리자면 乍晴乍雨(사청사우)이었다.
개었다가 다시 비.
궂은비는 아니고
그런 비는 한차례 내린 다음이라야 공식적으로 봄이 등장하겠지만
그래도 나들이에 찬비를 만나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는데
花開花謝春何管 꽃이 피고 꽃이 짐을 봄이라고 어쩌겠는가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가고 또 구름 옴을 산이 다투겠는가
꽃나무란 것이
꽃 없어도 좋지만
꽃 없이도 좋은 건
꽃 있어서 좋은 거니까
꽃 있으면 좋지만
꽃 때맞추기가 쉬운가
혹은 이르거나
혹은 뒤늦거나
허니까 다닥다닥 봉오리 붙은 것만 보고도
그만하면 됐다 할 게고
더러는 시든 채로 가지에 매달렸거나
더러는 꽃자리 피듯 바닥에 깔렸더라도
애잔한 마음 달래주며
그래도 보긴 봤다 할 것이다.
선암사, 금둔사, 순천만, 그렇게.
송광사는 남겨 두고.
해남, 장흥, 강진은 다음에.
딱 하루.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외도라면
꼬리가 길어서는 안 되니까.
웬 떨거지-멀쩡한-가 시 나부랭이 몇 줄 갈겼다고
“선운사~” 하면 “뒤깐?”이 생각나게 되었지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게다가 김훈이 몇 줄 보탰거든.
(그건 칼의 노래 아니네.)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
이궁...
사람 없는 날이라 나도 한번 앉아봤네만
근심 풀자(解憂)면 옷을 벗어야(解衣) 하는데
다 벗기엔 너무 춥더라고.
(앉은 사람은 필자 아님, 요 이미지는 문화일보에서)
그거 말고...
그러니까 그까짓 해우소가 명물일 것 없고
가람의 배치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아는 척할 것 없고
그냥 예쁘니까 “아 예뻐”하면 될 터인데
선암사 정말 예쁘더라.
잘 들어앉았어.
나무들도 어쩌면...
육백 살 먹은 매화나무도 있다니까.
(탄소측정하지 않았음.)
(꽃나무 종류는 늘어놓지 않겠음.)
아, 더러 피기도 하고
한주일쯤 뒤에 다시 와봤으면 싶은 것들도 있고
살짝 간 것도 있는데
그 왜 달은 보름 하루 전이나 후가 더 좋지 않던?
‘大成若缺(대성약결) 大盈若沖(대영약충)’으로 자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