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방콕

 

무슨 소린가

눈 뜨고 보니

목련은

많이 벌어졌지만

터지지 않았다.


(약병이 떨어진 거구나.)


황사

바람

그런 걸로 연기시키려고 그랬지만

봄의 제전 개막식 날

열기는 몸살 같다.


(어른 등 문질러드리다가

내가 잠들었던 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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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그러면 김환기이겠네.

그 옆에 매달려 가는 향안 여사

꼭 허리에 대검 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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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가 땅을 걸어갈 때는

꼴이 좀 그렇거든.

맹추 같은 얼굴에

뒤뚱 걸음이라고.

못생겼다 할 것인가

걸음새 탓할 것인가

잠간씩 우리에게 다가와서

하늘 높은

해 가까운

공기 맑은 곳에서

살던 모습 보여주니

고맙지 뭐.

인사 받았으면

떠나야 하는데

얻어먹을 것 없냐는 표정이면

욕먹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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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들이 물결을 일으켰다

    발을 헛디딘 새가 물결에 떠밀려 자지러졌다

    나는 나무 밑에 구멍을 파고 내 자작시집을 묻었다

    문자로 재주를 부리고부터 내 생은 급격하게

    멸망 쪽으로 기울었다

    이 순간 생을 바꿀 수 있다면

    당장 새가 되어 물결 속에 익사하리라

    봄은 겨울의 짙은 얼룩을 지워내느라 끙끙거리고

    나는 기어다니는 문자를 개미처럼 꾹꾹 눌러 죽이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한 덩이 식은밥처럼 세상이

    덩그러니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김충규, ‘물결 속에’-


저...

새는 익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소량의 자괴감은 정량의 비타민 같은 거지만

코 박고 죽을 것까지야.

괜찮은 벌이를 부끄러워하는 이를 본다는 건

그래도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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