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anso Garden (1)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도 세상 잘 돌아가는구나.
태양계에, 그리고 문화계에 아무 이상도 없다.
목련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너지지 않았고.
간밤 자정이 가까워 돌아왔다.
아침에 창문 앞에서 “아... 너 어쩜 좋지...”
내겐 좀 이상이 있다.
짐을 다 풀고 아앗...
모니터 용 안경을 놓고 왔다.
그야 다시 하면 되고.
오래 된 노트를 어디다 떨어트렸는지...
문필가도 아니고 창작 메모 노트도 아니지만
많이 섭섭하다.
꽃 이름(속명, 라틴어 학명) 적어둔 것만 열 쪽이 넘는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구나
그렇다니까
그랬으니까
그러면 어떡하지
그래도 할 수 없지
그러니 서운한가
그러나 견뎌야지
그렇지만 좀 그렇다
무슨 징크스는 아니지만
내가 다니면 비 온다.
떠나고 오고 봄나들이 꽃놀이 나갈 때.
비 오면 봉오리를 닫으니까
활짝 웃는 낯은 못 보지만
나다니는 사람 적으니까
사람에 치지는 않겠네.
궂은 날에도 좋은 일 있고
좋은 일에도 언짢은 것 섞이고.
(알면 됐다.)
하루 들리는 L. A.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 덕분에
꽃구경할 시간을 얻었다.
Descanso Garden.
자연환경에서 어떻게 제 철이 다른 꽃들이 한꺼번에 필 수 있는지...
튤립, 목련, 철쭉, 꽃자두, 라일락... 그건 뭐 한데 묶을 수 있다고 치고
앞으로는 동백, 뒤로는 장미가 함께 필 수 있는가 말이다.
살펴보면 저마다 조금 이르거나 늦거나
전성기를 비켜섰거나 제때에 이르지 못했다.
아주 때가 아니라면 내년을 기약하면 되겠지만
시들거나 마른 꽃 몇 개가 가지 끝에 아직 달린 걸 보고서는
한숨을 금할 수 없다.
조금 일찍 찾아올 것을.
더 속상한 쪽은 꽃나무이리라.
꽃 편에서는 “이보다 더 예쁜 모습 보여줄 수 있는데
이런 꼴일 때 찾아오는 바람에...” 라는 야속함이 있을 것이다.
너무 늙은 다음에 재회한 옛 애인들처럼.
네 번째 들리는데
일부러 너만 바라고 찾아갈 형편은 아니었어.
핑계가 있으니까 들린 김에 찾게 되는 것이다.
뽕 따러 갔지 임 보러 간 게 아니라고 우길 수 있거든.
비 오는 날 동백 숲.
틉 프스 사삭... 이건 그래도 한참 열고 있던 꽃이 떨어지는 소리.
톡 톡 토토 틱 팃팃 똑또그르 토토... 이건 단단한 봉오리가 그냥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심한 것도 아닌데.
외래종교의 잘 모르는 신조를 지키겠다고
목숨 버리기를 두려워 않던 이들이
절두산에서 모가지를 드리웠을 때 들리던 소리?
시산혈해.
(거기 희끗희끗한 것은 이차돈의 피라고 해두자.)
희미해진 느낌표들의 주검
안장하지 않고 돌아서려니
마음이 무겁다.
(그만할게. 마음도 그렇잖아 시작은 했지만 또 날밤 샐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