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탐사
아, 드디어 내게도 문자 메시지가...
‘긴급’이라는 빨간 글씨까지 붙여 들어온 것은
“황사 현상이 심하니 가급적이면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그래, 고맙다.
그런데, 처음 겪는 황사
눈이 침침하거나 목이 칼칼한 것 이전에 그 먼지 냄새.
들어온 지 오래 되었으나 온몸에서 먼지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토요일, 기껏 혼자 갈 데라고는 교보문고였는데
오늘 행동반경이 넓혀졌다.
조금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미답지를 탐사하듯이.
응, 어디냐 하면
환기미슬관과 영인문학관.
‘우정의 가교 김환기 이경성 전’
환기 알지, 알지만 좋더라, 참 좋더라.
(에이, 또 울었다고 그러지 말아야지.)
이경성 잘 몰랐는데 썩 괜찮더라, 평론 쪽으로 나가지 말 걸 그랬지.
(그 ‘평론’이라는 게
“나도 하자면 잘하지만 말씸야...” 그러지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잘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지 않는다고 저 모를 소리 하는 것 아닌가...)
남쪽까지 시간 들여 돈 들여 마중 나갈 것 없다. 환기미술관 입구의 청매와 진달래 좀 봐.
정현종 시인이 세 편의 자작시를 낭송했다.
‘시가 막 밀려오는데’의 끝자락을 물고 더러 질문이 있었다.
하여간 그런 시가 밀려오는데도
나는 일어나 쓰지 않고
잠을 청하였으니……
(쓰지 않으면 없다는 생각도
이제는 없는지
잠의 품속에서도
알을 부화한다는 것인지)
기름기 없음과 그 피부색, 백발에 점수 줬다. 암 그래야지.
한국어 잘 못하는데다가 시를 알지 못하면서 뭐라 하기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만,
질문들이 시답잖아 좀 그랬다.
그러니까... 앞서 밴 놈은 죽어버렸고(낙태) 나중 놈이 나와 버렸는데
죽은 놈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비교할 것도 없고
놓친 고기가 크다는 식으로 아깝지만 잊어버리기로 하고
썩 맘에 드는 놈 아니라도 그저 내 자식이니까 예뻐하기로!
그게 ‘작품’ 아닌가? 뭐 어려울 게 있다고.
오정희 소설가는 ‘새’라는 작품의 일부를 낭독했다.
“다과가 준비되었으니 가시지 마시고...” 라는 광고를 흘려듣지 않았다.
(아, 그때 배고팠거든.)
빈방에 자리잡고 나니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줄줄이 들어오는데,
모르긴 하지만 다들 ‘안보통’이었을 것이다.
(나만...)
오정희님 옆에 앉아 떡 몇 개를 쳐 넣었다.
(내가 먼저 자리 잡았었으니까.)
삼키기도 전에 다들 사라졌다.
Who cares, 더 먹고 일어나자.
흠, 작가들의 진한 흔적을 많이도 주워 모았더라.
귀한 것이 귀해 보이지 않도록.
(나중에 다시 와서 봐야지.)
모교의 스승쯤 되는-배우지는 않았지만- 이어녕님이 예의 명랑하지 않은 얼굴로 서 계신데
인사드리지는 않았다.
(명사들 많은 자리에서 내가 왜...)
무명용사 콤플렉스?
그리고 진동 모드로 한번,
바람이 연꽃 만나는 시간만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ㅎ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거기 벽에 붙어 있던 시화 중 두어 개 더 남긴다.
모든 사물들을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내 사랑은 언제나 그게 아니 된다
실물크기로 그리고 싶다
사랑하는 자정향(紫丁香) 한 그루를
한번도 실물크기로 그려낸 적이 없다
늘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이 내 솜씨다
오늘도 너를 실물크기로 해질녘까지 그렸다
어제는 넘쳤고 오늘은 모자랐다
그게 바로 실물이라고 실물들이 실물로 웃었다
-정진규 ‘자정향’-
그렇구나
그래 그랬던 거구나
너를 너무 크게 그리다가
네가 두려워지기도 하고
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고.
그 누구도 모르게
널 훔쳐보다가
들킨 듯
부끄러운 입맞춤
마른 가슴 적시는
간음(姦淫)의 어여쁨이다.
두려움보단 눈이 더 부셔
늘 나는 이 봄을 운다.
-성춘복 ‘함께 숲을 보며’-
그리고 미당...
(친일을 변호할 건 없지만
그만한 이 없다, 이제 그만들 하시게.)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난초는
궁금해서
꽃 피는 거라
(... ...)
바위가
저렇게
몇 천 년씩을
침묵으로만 앉았으니
난초는
답답해서
꽃 피는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