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1

 


마지막 련에 가서 교훈, 격언 같은 것 하나 툭 던지는 일 없으면 좋겠어.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그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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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시작한 대로 두면 좋겠던 걸.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순례 11’-


그려, 정말 그려.


뭐가 흔들린다고?

내 마음이.

흔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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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떠나는 친구 하나 배웅하고 싶은

    내 마음의 간이역

    한번쯤

    이별을 몸짓할 사람 없어도 내 시선은

    습관에 목이 묶여 뒤돌아본다.

    객실 맨 뒤칸에 몸을 놓은

    젊은 여인 하나

    하염없는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머무르지 못해 안타까운 세월이 문득

    꺼낸 손수건 따라 흔들리고 있다.


      -김재진, ‘기차타고 싶은 날’-


아침에 흡족하지는 않지만 빗방울 뿌리니

이틀 동안 서울을 덮고 있던 황사도 기세가 꺾여

하늘이 한결 깨끗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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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영감님...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1백50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 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新鮮感)을

    나는 어찌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요.


      -천상병, ‘비 오는 날’(전문)-


도시에 내리는 비?

그런 것 고르자면 끝도 없다.


    봄비에 젖으면

    도시도 조금은 부드러워져

    서로의 상처 닦아 줄 수 있을까

    빗방울처럼 맑아져

    잃어버린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곁에 머물지 못하는 정든 이들 위해

    어느새 꽃잎 보내고 홀로 선 나무들 위해

    봄비 떠나지 않고

    밤새 짙어지는

    성숙한 적막 주변을 서성인다


      -김금용, ‘봄비가 내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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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지만

또 미진한 듯 하여

조금 서글프기도 한 저녁

마주 보는 지하철 승객들이 모조리 졸고 있다.

어쩜 다 생긴 게 그러냐?

그래도 당신들이 그런 얼굴 될 때까지

맞고 채이며 울었으리라 생각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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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둥근 상(像)이 어디 흔턴가

    각진 성정 다스려오는 동안

    그가 울었을 어둠 속 눈물 헤아려본다

    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이 그를 다녀갔을 것인가

    단단한 돌은 물이 만든 것이다

    돌을 만나 물이 소리를 내고

    물을 만나 돌은 제 설움을 크게 울었을 것이다


      -이재무, ‘물속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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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거든

(있다면 말이지)

그러시게나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이해인, ‘황홀한 고백’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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