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Dolorosa 4

 

잘못 들어서 좋았던 길


팔당댐인지 팔당대교인지 안내판 잘못 읽으면

다산유적지 쪽으로 빠지게 되어 조안면에서 잠시 헤매게 되는데

그래서 바쁜 이들 속상하게 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참 좋더라.

볼 거 다 봤네.

잘못 들어 제대로 가는 길

그 잠간의 궤도수정으로 머뭇거리는 동안

봄을 원 없이 즐겼네.

하얗다 할 수도 없고(그건 배꽃)

분홍이라 그럴 수도 없는(그건 살구꽃)

그래 저게 벚꽃이구나

일본 열도에 널린 사구라가 아니고

조선 땅 밭둑길에 자라는 벚꽃은 저런 거구나

그렇게 뽐내는지 온몸으로 떨고 있는 자태 보았다. 

 

어느 겨울 꽁꽁 언 한강을 건널 때

사박사박 츠츠츠츠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건널 때

“건너가면 어디가 되나요?”라고 물으니

“봉안이다” 그러셨는데

그때 서리 덮인 밭을 지나며

“꽃필 때는 좋겠지만...”이라는 생각 있었는데

오십년이 지났구나

꽃필 때 들려보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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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못가본지 사십 년쯤 되었고

마침 벚꽃 철인데 겨우 며칠인데 하며 별렀으나

무슨 큰 구경거리나 난 줄 알고 이리저리 몰리던 그때 그 무리처럼

그렇게 어울리기는 너무 죄송한 때라

겟세마네 동산은 아니더라도

세족목요일 밤을 산에서 보내고

“멀찍이” 따라갈 길이 어딘지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도성에 들어가기는 싫어서

영문 밖으로 돌았다.

(꽃놀이는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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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에서 도평, 퇴촌, 양평, 양수로 가는 길에

아하 여긴 내 좀 알지

그리운 이름들 구터, 망주고개, 분원리, 귀여리(제청 말), 검천리(검단 말), 수청리를

거치게 되었다.

수양벚꽃이 한창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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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


“안녕히 가십시오 양평군을 벗어나십니다”라는 경계석 있는 언덕에

삼포 씌우는 검은 천막으로 두른 찻집이 있는데

남한강, 양평시, 무슨 섬(문희 씨 소유?)이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거기서 나는 주인을 야단치게 되었다.

13대째 그곳에서 산다는 홍씨, 말투조차 그렇게 순할 수 없는 고향사람인 셈인데

타관으로 나돌던 이,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에게 그는 왜 추궁당해야 할까?

나는 선산 산직이쯤 되고 그는 현장에서 적발된 도벌꾼쯤 되는 건지

“아니 시계(視界) 청소한다고 잔가지들 쳐내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그래 그게 그냥 베어버릴 것이란 말이오?

소문나면 그걸 보겠다고 찾아올 사람들이 줄설 텐데...”

“제가 그런 게 아녀요.  아무렴 제가 그걸 모르겠어요?

그래도 제가 돌보질 못했으니까... 죄송합니다.” 그러며

그는 정말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손을 비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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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익조(比翼鳥)니 연리지(連理枝)니 듣기 좋은 말이니까

(연애편지에) 인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떨어진 나무들이 자라다가 가지가 닿아 지붕을 이루거나

옆에 있는 놈과 소유권 분쟁을 하다가 서로 꼬이게 된 모습을 보고는

연리지라고 찰칵 찰칵 하는데,

혈관과 신경다발이 이어지고 생명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러니 실제적으로 한 몸이 아니고서는

연리지랄 수 없는 게야.

머리 두 개, 심장 두 개

그야 날 때 따로 낳았으니 어쩔 수 없다만

나는 늘 너를 느껴

나는 늘 너처럼 느껴

너와 끊어지고는 난 살 수 없어

너를 묻는 날 나는 죽는 거야

그래야 연리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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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누가 끊었지?

생각 없이 휘두른 낫질이라 해서 죄가 감해질 건 아니지만

일부러 끊었다면 그건 정말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겠네.


(티낼 건 아니지만) 고난절이라 한마디 하는데...


Alfred Jarry가 그랬다.

“God is the tangential point between zero and infinity.”

‘하느님’이라는 기호를 대입하기가 뭣하면

성육신(in-carn-ation, 化肉)이라 하자.

실은 “스치듯 만나 잊을 수 없던”이 아니고

‘관통(貫通)’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당신께 꿰였습니다.

내 몸에서 흐르는 피 다 빠져나갈 때쯤 되어

당신을 수혈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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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생명줄이 끊어진 것이다.

제가 자르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끊어졌으면

죄를 먹고 죄 안에서 사는 것이다.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그렇게 죽어 누우심으로 양안(兩岸)을 이을 수 있을까?

대협곡은 건널 수 있을까?



재수 없는 날


강이 잘 내다뵈는 데를 찾아

보호울타리 넘고 덩굴 헤치며 가파른 비탈 올라가다가

제비꽃을 밟을 뻔 했다.

급히 발을 옮기다가 중심을 잃어 주저앉게 되었다만

그래서 널 가까운 거리에서 들여다보게 되었지.

꺾을까 하다가

반지 만들어 매어줄 사람도 없고

몇 걸음 옮기다가 버릴 것인데

해서 “예쁘구나 그럼 잘 있거라” 하고 떠났는데

좀 있다가 후회로 남는다.


나중에 버림 받더라도

(버림 받긴...  꽃이 그런 거지.  어차피 시드니까...)

넌 내 손에 들려야 했어.

제비꽃이 어디 귀한 꽃인가?

오랑캐꽃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더구나.

개망초보다 날 것도 없는 풀

넌 오늘 날 만났기에 귀하게 된 거야.

재수 없이 꺾였더라면

그래서 행복하게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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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큰 구경거리인 줄 알고

“대관절 뭐기에...” 싶어 기웃거리던 시몬

구레네 사람이라 좀 검었을 거라

덩치도 괜찮았던지 힘 좀 쓸 것 같아

로마 군관의 눈에 띄었을 거라.

“임마, 너 이 십자가를 지고 가라.”

아니 이게 무슨...

하필이면 내가...

그것도 수치의 형틀을 짊어지라니...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일세.


별 볼 일 없는 시몬

그 재수 없음으로 당신은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되었네.

뭐 하는 여자였던지 땀 한 번 닦아드렸던 이는

성 베로니카라고 부르는데

당신은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갔잖아

그보다 더한 영광 있을까.


분통터지고 투덜거렸을 테지만

그러다가 고맙다 그러시며 안쓰러워하시는 눈길을 받고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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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길 핏자국


갤러리 서종에 들렸다가 양수리로 돌아가는 길

유장한 북한강 물즐기를 바라보며 위태하게 운전하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앗!”

그래서 끼익~

그러니 욕먹은 건 당연했지만

어느 소문난 델 일부러 찾아가면 이런 진달래 군락(群落)을 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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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피?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 ...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주기철, ‘영문 밖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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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말이 없어서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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