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새
부활절 아침
흰 셔츠 입고 양복 걸치다가
(참 오래간만이다 축일이니까.)
그 시린 흰빛 때문에 아릿함 잠간 스치고
보라 과꽃 색깔에 좀 찡해졌다.
쨍한 햇볕 아래 달궈진 자갈밭에
양잿물로 빤 옥양목 널어놓으면
바로 볼 수 없도록 눈부셨거든.
넉넉하지 않은 참회 때문에
아직 보라를 치우지 못했어.
자, 저 거울 속에서 웃는 못난이는 누군고?
다려 입은 셔츠 깃이 맘에 안 든다는 겐가?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사쓰 같이
당한 그날은...
(... ...)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천상병, ‘그날은 -새’-
많이 눌렸었구나, 혼났지?
그런데, 웬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새’ (전문)-
좀 슬픈가?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다.
그런데 그 소리를
울음소리일지 모른다고
어떤 시인이 했는데, 얼빠진 말이다.
새의 지저귐은
삶의 환희요 기쁨이다.
우리도 아무쪼록 새처럼
명랑하고 즐거워하자!
-‘새소리’-
뭘 잘 모르는, (부활을 알았겠나), 저승 갈 여비를 잔돈으로 모으던 천상병이
예배당 가는 사람더러 같이 놀자고 그런다.
(오늘 은혜 받기는 다 틀렸다.)
그래도 그는 날 줄 알았거든.
끊임없이 초월했거든.
무한한 하늘에
태양과 구름 더러 뜨고,
새가 밑하늘에 날으다.
내 눈 한가히 위로 위로 보며
하늘 끊임없음을 인식하고
바람 자취 눈여겨보다.
아련한 공간이여.
내 마음 쑥스러울 만큼 어리석고
유한밖에 못 머무는 날 채찍질하네.
-‘하늘’-
아무렴 없는 게 좋겠냐
가난은 하나도 멋질 게 없어.
(아 헌금할 돈 좀 있었으면...)
그래도 천상병 있으니까...
나 천상병이올시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
천상병이올시다
생김새는 거지처럼 생겼지만
마음은 거지가 아니올시다
가장 부자가 되고 싶어
가장 가난해진 사람
죽었으면 하늘에서 살 사람
죽지 않아서 이 땅에 사는 사람
나 천상병이올시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으려고 쓴 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 먹고 살아가는
천상병이올시다
-이생진, ‘혜화동에서 만난 천상병’-
오늘 천상병 데리고 예배당 가고 싶었는데
눈치 채고 어디로 샜구나.
눈 좋은 사람은 알까, 새가 몇 마리나 있는지(보이는 것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