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부터 복사꽃까지
그래도 돌아설 수 없어서
폭발력이 강한 만큼 휘발성도 강해서
그때 점화되지 않으면 없었던 듯 사라지는 연료도 있을 것이다
잘 불붙지 않는 고체연료
한번도 시원하게 타오르지 못하고
연기만 내던 것인데
이게 꺼지지도 않고 사위지도 않는다
일부러 물 부어 끌 것도 아니고
꺼지지 않았는데 놔두고 떠날 수도 없다
잠깐인데
보름이나 될까
매화 지고 복사꽃 필 때까지
까딱하다가는 꽃구경 한번 못하고 지나가고 마는데
농사 시작하며 바쁜 때 구경이 다 뭐야
그러니 팔자 좋은 이들의 매화타령이 예쁘게만 들리지는 않을 터
그만해도 어딘데 하다가도
턱없이 자존심만 키워준 게 아닌지
제까짓 거 하면서 깎아내리다가
매화야 매화야 그냥 얻은 이름이겠니
달랜다
내 마음을 달랜다고
간 다음에야
너 만한 애 없다고
그때쯤 동백도 피어
네 마음 따기도 전에 똑똑 떨어져
그럴 거라면
하고 돌아섰다가
다음날 보면 또 달고 있더라
가없는 그리움
처절한 피눈물
차마 뭐라 할 수 없어
매화보다 못해서가 아니고
시원찮은 내공으로 네 강렬한 폭사를 견딜 수 없어서
가까이하지 않은 거라니까
어제 초상집 나와
섬돌에 놓인 구두 들어 신으려는데
꽃잎 수북이 담겼더라
낙환들 꽃 아니랴 했는데
그래도 성한 것 골라 책갈피에 끼어 누르기도 했는데
벚꽃 잔해가 꼭 비늘 같아서
이거 어물전도 아닌데 웬 비린내는
하며 골난 표정 지었지
저 강변 마을마다 매화꽃은 터져
강물은 다시 풀리고
이 아침, 사람들은 보리밭으로 나간다
뼈가 마르는 외로움에 지친
저 참절의 먹때왈빛 얼굴들
날피리 떼 일기 시작하는 강물에 씻고
또 매화꽃을 바라본다
보아라, 저 유장한 강물보다
더한 그리움의 속절들 있어
서러운 나라와 폐허의 마음을 딛고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
보리거름 주다 잠시 쉴 짬에도
거기 벌써 푸릇푸릇한
냉이 달래 지칭개를 한 웅큼씩 뜯는가
저 강변 마을마다 매화꽃은 터져
강물 위로 통통통통
흰비오리 떼를 냅다 달리게도 하는
그 맑고 생생한 서러움으로
이 저녁, 집집마다에선
봄나물국이 쩔쩔 끓을것이라면
이 봄이 저리 환해진들 또 어쩌겠느냐
-고재종, ‘꽃 터져 물 풀리자’-
꽃빛 꽃빛 복사꽃빛이라면
네 두 볼에 끼친 요런 빛이런가.
꽃빛 꽃빛 복사꽃빛이라면
네 땀이슬 맺힌 도도한 가슴의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그 빛이런가.
꽃빛 꽃빛 복사꽃빛 어리는
도화수 아직 시린 물가에서
네 치마에 어디에 함부로 쏟는
도화주 후끈한 술이여,
桃色이라고 했거니
자물쓴다고 했거니
그렇게 질탕한 것도 그만
무릉과 이승간의 꽃빛 탓이거니
꽃빛 꽃빛 복사꽃빛의 하룻날,
저렇게 꽃잎은 지고 풀풀 지고
저렇게 나비는 날고 활활 날고
너와 나는 우련우련하여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곡지통으로
가는 봄날을 말릴 일이거나.
서로를 또 한번 훔친다거나.
-고재종, ‘꽃빛 꽃빛 복사꽃빛’-
그런데 말이지
도화살
(煞은 좀 듣기에 그렇다만)
그거 나쁜 건가
잘만 살던데
망하는 거야 걸려들어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못난이들
알리지 않으면서
알아주기 바라던
물에 쓴 이름
그 척애(隻愛) 너무 끌었단 말이지